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의 헤어드레서 비달 사순이 9일(현지시간) 84세로 타계했다. BBC방송은 “사순이 이날 아침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숨졌으며 사인은 노환으로 인한 자연사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1960년대에 주로 활동한 사순은 머리에 바가지를 씌운 듯한 ‘보브(bob) 컷’ 스타일을 창시, 당대 여성들의 머리 모양에 혁신을 일으켰다. 50년대까지 마릴린 먼로처럼 풍성한 헤어스타일을 고집하던 여성들은 그가 선보인 단순하고 간편한 스타일에 열광했다.
사순의 절친한 친구인 영국 헤어스타일리스트 니키 클라크는 “사순은 헤어롤러와 백코밍(모발을 거꾸로 빗질해 부풀리는 것) 속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것을 제안했다”며 “그는 어떤 면에서 60년대 스타일을 정의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28년 영국 런던에서 유대인 부모 아래 태어난 사순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고아원에 맡겨졌다. 스무 살 때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에 참전한 그는 귀국 후 유명한 헤어스타일리스트 아래에서 본격적으로 미용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54년 런던에 자신의 이름을 딴 첫 헤어살롱을 열면서 헤어스타일리스트로서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68년 개봉한 영화 ‘로즈메리의 아기’에 출연한 미아 패로, 69년 아카데미상 수상작 ‘우먼 인 러브’의 주인공 글렌다 잭슨 등 당대 유명 여배우들의 머리가 모두 그의 손 끝을 거쳤다.
경영에도 뛰어난 수완을 보인 사순은 유럽과 미국, 일본, 한국 등 세계 각지에 헤어살롱 지점을 내고 샴푸, 드라이어 같은 헤어 스타일링 제품 사업에도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2009년에는 세계 미용업계를 발전시킨 공로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수여하는 대영제국 커맨더 훈장(CBE)을 받기도 했다. 평생 4번 결혼한 사순은 네 번째 부인 론다와 전처 소생 자녀 3명과 함께 살았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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