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우려했던 최악의 길로 치닫고 있다. 제1당인 신민당에 이어 제2당인 급진좌파연합 시리자도 연정구성에 실패, 구제금융을 둘러싼 그리스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연정구성의 공은 다시 제3당인 사회당으로 넘어갔지만, 사회당 역시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해 다음달 총선 재선거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리스의 연정구성 실패에 이은 재선거는 구제금융의 조건인 긴축 거부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탈퇴의 전조라는 인식이 파다하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대표는 9일 "좌파정부 구성의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며 협상권을 에방겔로스 베니젤로스 사회당 당수에게 넘겼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베니젤로스 당수는 10일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의 추인을 받아 협상에 나섰다. 6일 치러진 총선에서 13.2%의 지지율을 얻은 사회당의 의석은 전체 300석 중 고작 41석. 과반을 채우려면 최소 110석 이상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다수당의 협력을 얻는 게 필수적인데, 1당과 2당인 신민당과 시리자가 긴축을 놓고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어 이들을 동시에 포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스 헌법에는 제3당마저 정부 구성에 실패할 경우 재선거를 실시하도록 돼 있다. 일부에서는 그리스 정부가 이미 재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다음달 17일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등 그리스의 목줄을 쥐고 있는 '트로이카'는 구제금융 지원을 연기하면서 그리스 압박에 나섰다. 3월 그리스에 2차 구제금융 1,300억유로를 지원키로 한 트로이카는 이날 집행 예정인 52억유로 중 10억유로를 유보했다. 구제금융 집행기관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은 "10억유로는 그리스의 상황에 따라 집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리스가 구제 조건인 긴축과 경제개혁 약속을 파기할 경우 손을 뗄 수 있다는 경고다. 다음주 ECB에 33억유로를 상환해야 하는 그리스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수혈이 절실하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도 점점 커진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