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거낙업(安居樂業)은 춘추전국시대를 산 노자(老子)가 꿈꾼 세상이다. 모든 백성이 고향에서 근심 없이 살며 생업을 즐기는 태평성대를 뜻한다. 숱한 나라와 제후가 천하 패권을 다툰 전란에 쫓긴 백성이 집과 생업을 잃고 유리걸식(流離乞食)하던 난세(亂世)의 철학자가 정치와 삶의 지표로 제시한 배경을 먼저 헤아릴 만하다. 노자의 도가(道家)사상이 흔히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처세술, 피지배자의 인생철학으로 평가되는 바탕이다.
■ 후세에 왜곡한 측면이 있지만 노장(老莊)사상은 현실도피 성향이 짙다. 난세를 헤쳐 나가는 군주의 통치철학, 정치사회적 지배이념이 되지 못한 까닭이다. 도가와 더불어 춘추전국시대 사상의 주류를 이룬 공맹(孔孟)의 유가(儒家)사상이 인의(仁義)와 지혜로 백성을 다스리는 군주의 통치를 떠받친 기본사상인 것과 비교된다. 그러나 이 난세의 철학을 치세(治世)의 근본으로 삼은 군주도 있다.
■ 청나라 강희제(康熙帝)는 백성의 안거낙업을 위해 국궁진력(鞠躬盡力), 몸을 낮춰 힘을 다하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아 역사상 가장 강성한 제국을 이끌었다. 요즘 말로 국민을 섬기는 리더십을 실천한 어진 군주 강희제는 불과 여덟 살에 황제에 올라 온갖 파란을 겪은 끝에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추앙되기에 이르렀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안거낙업이 정치와 삶의 최고 목표"라고 되뇌는 것은 강희제의 삶을 염두에 두었나 싶다.
■ 그는 연초 현충원 방명록에도 "안거낙업이 실현되도록 온 정성을 다하겠다"고 적었다. 서구 정치의 트렌드 행복의 정치(Politics of Happiness)를 본받은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뜻은 고상하지만 노자와 강희제의 철학은 이 글처럼 21세기 대한민국 유권자, 특히 2040 세대에 너무 멀고 어렵다. 또 한가롭게 들린다. 그게 아니라도 "정치의 목표는 철학자가 세우고, 정치가는 그 길을 찾아 실행하는 게 임무"라고 했다. 18세기 미국의 정치가 토머스 버크가 일깨운 정치의 요체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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