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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써전이다] <10> 김준기 서울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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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써전이다] <10> 김준기 서울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입력
2012.05.1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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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은 정성" 신념… 100세시대 고령자 암치료 '새지평'

"차트에서 환자 나이를 보는 순간, 딱 도망가고 싶더군요. 그런데 그 할머니를 만나고 나선 반대로 확신이 생겼어요. 수술 받고 나면 110살까지는 사실 수 있을 거라고 말이죠."

할머니는 만 102세였다. 보호자로 동행한 아들 나이가 여든 가까이다. 아무리 실력 있는 집도의라도 부담을 느낄만하다. 지난해 12월 102세 할머니 몸에서 악성종양을 무사히 떼낸 의사는 김준기(61) 서울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다. 그의 수술은 병원이 자신 있게 최고령 암 수술 부문 기네스 등재를 추진할 정도로 세계적인 기록이었다.

잘 해 봤자 본전?

할머니는 제주도의 한 의원에서 수술을 요청해왔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수술이 잘 될 거라고 김 교수가 예상한 가장 큰 이유는 환자 본인과 가족의 의지였다.

"그 할머니, 수술 전날 병원에서 꼿꼿하게 앉아 기도하시는 모습이 70대 정도밖에 안돼 보였어요. 암만 아니면 원체 정정하신 데다 삶에 대한 의지가 대단하셨거든요. 아드님도 어머니가 수술로 잘못되시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고요. 수술을 많이 하다 보면 일종의 '감'이 생겨요. 환자 행동을 보면 어느 정도 느낌이 오죠."

사실 80대만 되도 수술을 포기하는 환자가 대부분이다. 자녀들도 혹시 합병증 때문에 더 고생하시지 않을까 하고 부모에게 적극적으로 수술을 권하지 못한다. 꺼려지긴 의사도 마찬가지다. 고령 환자 수술은 잘 해 봤자 본전이라는 인식이 여전하다.

"노화한 조직은 수술이 더 힘들어요. 약해져 있어서 찢어지기 쉽고 다루기 어려운 데다 수술 후 회복도 젊은 조직보다 훨씬 늦으니까요. 심폐기능이 약하고 다른 병도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아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겨 돌발상황이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실제로 102세 할머니 수술 때도 그랬다. 할머니는 직장(항문과 연결돼 있는 대장의 맨 아랫부분)과 구불결장(대장에서 직장에 가장 가까운 부분)에 각각 암이 있었다. 수술실에서 환자 뱃속을 관찰하는데, 맹장 근처가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맹장수술 부위에 소장과 대장의 많은 부분이 달라붙어 있었다.

"너무 심했어요. 유착 떼는 데만 서너 시간이 걸렸으니까요. 그 정도 유착을 견뎌내셨을 만큼 치유능력이 대단한 할머니이니 이번 수술도 잘 회복될 거라는 믿음이 더 굳어졌죠.

유착된 장을 제대로 펴 놓고 나서야 김 교수는 할머니의 대장에서 암이 있는 부분을 떼냈다. 그리고 결장 윗부분과 직장 아랫부분을 이었다. 총 6시간이 걸렸다. 유착이 없는 젊은 사람들 대장암 수술 시간의 두세 배다.

바야흐로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다. 100세 넘게 장수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시대를 두고 최근 유엔이 붙인 이름이다. 수명이 늘면서 노인성 질병이나 고령 수술도 자연스럽게 많아질 것이다.

"고령 암 수술은 수술의 개념이나 방법 등을 일부 새롭게 볼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지금은 수술 후 5년간 생존하면 보통 완치로 보는데, 100살 넘게 사는 시대엔 그 정도론 부족할지 몰라요. 아주 고령이고 건강이 안 좋아 여명이 많지 않은 환자는 수술 범위를 젊은 사람보단 작게 조절하는 게 나을 수도 있고요."

102세 수술 성공 소식이 알려진 뒤 김 교수를 찾는 고령 환자가 부쩍 늘었다. "얼마 전엔 아흔 된 어머니를 모셔온 아들이 '선생님은 102살도 살리셨으니 우리 어머니 수술은 아무 것도 아니죠?' 하던데, 아무 것도 아닌 건 절대 아닌데 말이죠."(웃음)

항문 지켜주는 직장암 수술

김 교수는 대장암 수술의 97~98%를 복강경(배에 구멍을 뚫고 넣어 장기를 들여다보는 내시경)으로 한다. 102세 할머니 역시 그랬다. 대장암 복강경 수술이 국내에서 처음 시작된 건 1992년. 가장 먼저 1,000건을 기록한 의사가 김 교수다.

"1989~1991년 미국에서 복강경 수술을 공부하는 동안 서양의사에 비해 한국의사가 수술을 정말 잘 한다는 걸 확인했어요. 당시 의학 전체로 보면 우리가 서양보다 발전이 더뎠지만, 적어도 수술기술만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생겼죠."

내친 김에 김 교수는 복강경으로 항문 괄약근을 보존하는 수술기법도 발전시켰다. 암이 항문에서 약 7㎝ 이내에 생긴 하부직장암 환자는 수술로 암을 다 제거하고 나면 항문을 닫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직장뿐 아니라 항문 괄약근을 모두 떼어냈기 때문이다. 대변을 내보낼 땐 풀고 내보내지 않을 땐 조이는 괄약근이 없으면 사실상 항문은 없는 거나 다름 없다. 그래서 하부직장암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대변을 배꼽 옆에 만든 인공항문으로 빼내기 위해 항상 배변주머니를 달고 지내야 했다. 몸 힘든 건 둘째치고 기본적인 인권을 잃어버린 듯한 자괴감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많다.

"1990년대 초 외국에선 개복해서 항문 괄약근을 살리는 수술이 시작됐어요. 그걸 유심히 보고 복강경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변형시켜 1996년 처음 성공했죠. 당시 외국에서도 그런 사례는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수술 전 먼저 방사선치료로 암의 진행을 막고 크기도 줄인다. 그런 다음 암이 생긴 부위를 떼내고 윗부분에 남은 대장과 괄약근을 포함한 항문을 바로 이어준다. 이때 복강경을 쓰면 직장이 들어 있는 골반 속 좁은 공간에서 괄약근 주변의 미세한 구조를 확대해 볼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하부직장암 환자 10명 중 8명은 항문을 보존할 수 있었어요. 암이 생긴 위치가 항문에서 5㎝ 미만으로 특히 수술이 어려운 환자도 73.1%가 항문을 유지했고요. 미국이나 유럽보다 훨씬 높은 수치입니다." 2003~2009년 김 교수에게 수술 받은 환자 274명을 분석한 이 결과는 암 치료 분야 국제학술지인 '국제방사선종양학회지' 2011년 10월호에 실렸다.

"자기실력 과신 위험천만"

김 교수는 "수술은 정성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사가 자기 손, 자기 실력을 믿고 기계적으로 수술 건수 늘리는데 집중하다 보면 자칫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수술 잘 한다는 의사가 있으면 지금도 직접 찾아가 보고 들으며 자신의 수술 방식과 비교해본다. 동료나 후배 의사들에게 자신의 수술을 일부러 많이 보이고 알려주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면서 실력도 는다고 한다.

"무조건 수술 많이 하는 의사를 찾는 환자들이 여전히 있죠. 하지만 '수술 건수=수술 실력'이란 생각은 위험합니다. 여러 번 해봤던 수술이라도 꼼꼼히 따지고 확인하고 고민하고 나서 메스를 들어야죠. 생명이 달려 있으니까요."

■ 김준기 교수와 복강경수술 일문일답

"한국의사들 정교함은 이미 세계최고 수준"

Q. 국내 복강경수술 수준은.

A.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최고 수준이다. 특히 복강경으로 대장암을 수술하는 비율은 우리나라 평균이 최근 60%를 넘었다. 일본도 50%가 안 되고, 미국은 약 20%에 머물러 있다.

Q. 어떤 암에 복강경수술이 가능한가.

A. 현재 위암과 대장암, 전립선암, 담낭암, 폐암(흉강경∙가슴을 열어 내부를 들여다보는 내시경) 수술 등을 주로 복강경으로 하고 있다. 복강경 수술이 많은 암 중 하나인 위암은 최근 장기생존율이 개복수술과 별 차이가 없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Q. 의사에게 복강경수술의 장점은.

A. 맨눈으로보다 5, 6배는 더 크게 볼 수 있고, 다른 조직에 가려 보이지 않는 내부까지 깊숙이 기구를 넣어 확인할 수 있다. 개복할 때보다 암 조직을 적게 만지면서 수술할 수 있다. 수술 중 암 조직을 많이 건드릴수록 암이 퍼질 위험이 커진다.

Q. 누구나 복강경수술을 받을 수 있나.

A. 그렇진 않다. 수술을 많이 받아 유착이 심해지는 등 상태가 나쁘거나, 암 조직이 너무 커서 복강경기구로 다루기 어려우면 개복이 원칙이다. 특히 대장암은 암 덩어리 때문에 장이 막혀 부풀어 있을 때, 장 벽에 구멍이 뚫려 염증이 심할 때는 복강경수술이 불가능하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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