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결혼 지지를 선언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동성애자의 결혼을 공개 지지한 건 오바마가 처음이다. 진보진영은 민권운동역사의 중요한 순간이라며 환영했지만 종교계와 보수진영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동성애자의 권리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문화전쟁이 경제문제를 희석시키면서 당분간 선거 판을 달굴 전망이다.
오바마는 9일(현지시간) abc방송 인터뷰에서 "동성커플이 결혼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런 생각을 명백히 밝히고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성 결혼에 대한 의견 표명을 자제해온 그는 이날 "동성애자가 공정하고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하지만 (동성결혼이 아닌) '시민결합'을 해법으로 여겼다"면서 "결혼이란 말의 강한 전통 때문에 이를 (동성커플에게) 사용하는 것을 주저했다"고 털어놓았다. 시민결합(civil union)은 동성커플에게 결혼과 같은 법적 지위나 부부의 권리를 인정하되 결혼이란 용어는 허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오바마는 지금까지 동성결혼에 대한 의견 표명을 피한 채 "생각이 진화하고 있다"는 말로 대신했으며 이 때문에 진보진영으로부터 불임정권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성 칼럼니스트 루스 마커스가 워싱턴포스트(WP)에 "'진화하고 있다'는 오바마의 핑계에 찰스 다윈조차 인내심을 잃었을 것"이라고 썼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가 입장 표명을 미룬 것은 이 문제가 표심을 잡기 어려운, 득표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이슈였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이날 밤 지지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생각이 바뀐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는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동성커플 부모를 둔 친구들이 있는 두 딸 사샤와 말리아를 보며, 그들 부모가 다르게 대우받아선 안된다고 믿게 됐다"며 "그래서 나의 신념을 공개할 때라고 결심했다"고 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마태복음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 6일 조 바이든 부통령의 예상치 못한 찬성 발언이 오바마의 지지 선언을 촉발한 측면도 있다. WP의 블로거 그레그 사전트는 "정치적 계산에 상관없이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순간"이라며 오바마의 공개 지지를 환영했다.
오바마의 지지 선언이 정부 차원의 동성결혼 합법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뉴욕타임스가 "정치적 충격이 예측 불가능하다"고 짚을 만큼 그의 발언은 모험에 가깝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의견(52%)이 반대(44%)보다 많았고 추세적으로도 찬성 의견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1월 대선의 승패를 좌우할 9개 경합주(선거 때마다 지지 정당이 오락가락하는 주)에서는 동성결혼 반대 의견이 더 많다. 오바마 그룹에도 미온적이거나 유보적 입장이 적지 않으며 주요 지지세력인 흑인과 라티노도 반대 성향이 강하다. 정치 평론가들은 "오바마가 두려움 없이 정치 주사위를 떨어뜨렸다"거나 "결정적 문화전쟁을 선거 전면에 등장시킨 정치적 지진"이라고 표현했으며 허핑턴포스트는 "진화가 완성됐다"고 평가했다. 동성결혼은 미국 50개 주 가운데 매사추세츠, 뉴욕, 아이오와 등 6개주와 워싱턴시에서 허용하고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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