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꽃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나다. 뭔가 푸른 것들이 내 집 창가에 넘실댈 때의 설렘을 알아버린 이후로는 돈 아까운 줄 몰랐더랬다. 오죽하면 아파트 베란다 한 가득 상추에 치커리에 고추까지 웃자라게 하였을까.
족히 백 개 남짓 되는 화분도 모자라 생선 담는 스티로폼을 여러 개 들여서는 흙을 퍼 담고 나 보자고 나 좋으라고 이것저것 씨를 뿌리던 나, 그걸 본 누군가는 장하다며 칭찬을 하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과욕이라 혼쭐을 냈었지. 예쁘다고는 못할망정 왜 남의 꽃밭에 침을 뱉나 흥!
섭섭한 마음에 쯧쯧 혀를 찬 누군가에게 도끼눈을 흘기기도 한 나였건만 요즘 들어 대략 난감하게도 그의 충고가 여러모로 가슴에 와 닿는 중이다. 그때 그는 말했지. 꽃의 입장이 되어봤는지, 그 많은 꽃들 하나하나에 책임은 질 수 있는지, 이를 사람으로 치환하건대 네가 맺는 인간관계는 다분히 그러하지 않는지.
두 귓불까지 빨개질 정도로 발끈했던 나였으나 그의 예견대로 나는 지금 그 반성 중에 있다. 대구에서 뵌 한 선생님이 던지신 질문 하나에 턱 사레가 들렸던 거다. 너는 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그 순간 주책 맞게 눈물이 왜 그리 쏟아지던지. 그 많던 화분 다 죽여 버린 나와 달리 부모님 집 베란다는 평생이 사시사철 푸르다. 채 열을 넘지 않지만 저마다 이름이 있고 어느 하나 어느 하루 손 안 가는 녀석이 없다. 나는 그렇게 컸을 것이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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