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봄 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오늘 건강검진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는데 나이를 먹으니 혹시 이상은 없는지 괜히 두려워지네요…"
지연숙(51) 교보생명 재무설계사(FP) 명예상무는 10일에도 손글씨로 정성껏 편지를 썼다. 끼니는 걸러도 고객한테 편지 쓰는 일만큼은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는 지 상무는 이 일을 꼬박 10년째 하고 있다. 그 손편지를 받는 고객이 한 달에 많게는 1,000여명, 그간 보낸 편지가 10만 통이 넘는다. 그는 "어떤 이는 편지 쓰는 작업을 고객관리쯤으로 여기지만, 저에겐 일이 아니라 고객과의 감성 교류"라고 말했다. 게다가 "감동 편지 잘 받았고 지금은 형편이 어렵지만 여유가 생기면 꼭 연락을 하겠다"는 따뜻한 마음의 답장을 받는 기쁨도 크다.
지 상무의 이런 정성은 고스란히 눈부신 성과로 돌아왔다. 23년 차 재무설계사인 그는 2007년과 2010년에 이어 올해 세 번째 보험왕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만 수입보험료로 123억원을 벌어들여 회사에서는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으로 통한다. 더 놀라운 건 13회차 계약 유지율(보험계약을 1년 이상 유지하는 비율)이 수년 간 100%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그를 통해 보험을 가입한 고객 중엔 단 한 명도 1년 내 중도 해약한 사람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덕분에 올해는 전세계 보험인들의 꿈인 '백만달러 원탁회의(MDRT)' 종신회원에도 올랐다. 회원자격을 10년 연속 유지한 결과다.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MDRT는 영업실적만 좋다고 회원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계약 고객과 분쟁이 한 건이라도 있으면 회원으로 받지 않아 전세계 생명보험 설계사의 6%(2만2,000여명) 정도만 가입돼 있을 정도다.
지금은 누구보다 잘 나가는 설계사지만 지 상무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을 회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지 상무는 "딱 10년 차 되던 2000년 드디어 동대문시장을 뚫어 많은 상인들을 고객으로 유치했는데 외환위기 이후 고객들의 경제상황이 급격히 나빠졌고 해약 건수도 늘었다"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에 이상신호가 와서 병원에 가니 어깨와 무릎 연골이 마모돼 있는 등 건강도 엉망이었다"고 말했다. 10년간 4㎏짜리 노트북과 서류뭉치, 고객들한테 줄 비타민 음료, 전단지 등이 담긴 가방 3, 4개를 무작정 이고 지고 다닌 게 화근이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지쳐 일을 그만두려고 하던 찰나 우연히 교보생명 연도대상 시상식에 참석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입사 20년 만에 이 자리에 올랐다"라는 보험왕 수상자의 소감을 듣고 지 상무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고 한다. 그는 "나도 앞으로 10년 후인 2010년 저 자리에 올라가 보자는 오기가 생겨, 이메일 주소를 그날 'JYS-2010'으로 바꿨다"고 했다. 결국 자신과의 약속을 3년이나 단축한 것도 모자라 3번이나 보험왕에 올랐으니 목표를 초과 달성한 셈이다.
하지만 그는 벌써 다른 목표를 세우고 있다. 지 상무는 "후배 재무설계사들을 위한 전문양성기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는 "고객의 성향을 빨리 파악하고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신뢰를 얻으라"고 조언했다. 지 상무는 결혼 전 5년간 의상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쌓은 경험이 상대방 성향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됐다. 또 지 상무만의 비범한 장점 중 하나가 한번 봤던 고객의 목소리는 절대 잊지 않는 것이라, 그 장점을 살려 통화를 자주 한다고 한다.
지 상무는 끝으로 "보험 고객은 단순히 돈을 맡긴 게 아니라 본인의 일생을 맡기는 것"이라며 "진심으로 다가가야 고객이 마음을 연다"는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영업비밀을 공개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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