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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2. 고향에 남은 자취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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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2. 고향에 남은 자취 <29>

입력
2012.05.0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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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여봐라 어릿광대가 나오신다

뒷꼭지 지르면서 핀잔 악담 하는 것을

술로 알고 안주로 알아 가가호호 돌아치며

산에 가면 산신 덕에 물에 가면 용신 덕에

길로 나면 길 덕에 고개고개 서낭 덕에

입은 덕은 많지마는 새로 새덕 입혀주세

뒷전에서 버나며 살판이 준비되는 동안 재담꾼 신통이가 나와 장구재비와 수작을 나누는데,

아이구 장구가 춤 따라와야지 춤이 장구 따라가나?

할미새 씹 까불 듯 춤추는 걸 춤 따라 장구 치지 그런 말 말게나.

니미 공알.

이게 무슨 소린가?

니미 공알 소리지. 돈을 많이 주면 부귀 덩덩 잘살라 하구, 돈을 안 주면 괜히 왔다 꽁알꽁알 하구.

영동 장엔 왜 왔나?

정성 발원 잘 받았나 보러 왔지. 그나저나 이녁은 굿을 한 달에 몇 자리 다니나?

스물일곱 번 다닌다, 왜? 이녁은 얼마나 다니는데?

자리 판 다니지.

잘 노나 보구나. 한 자리 반을 다니는 걸 보니. 어디 한번 해보우.

해보라고? 자, 해볼 테니 잘들 보구려. 남녀노소 아들딸에 명 달라 복 달라 발원인 모진광풍 들여 불구 비단바람 내려 불 때.

그렇게 하니까 자리 판밖에 못 다니지

이빨이 빠져서 말이 헛나왔다. 그나저나 나 장개가는데.

뭘 해 가지구 가는데?

말 없는 바지, 길 없는 저고리에, 등 터진 버선, 수숫잎 고름, 그렇게 해 가지.

사당짜리는 뭘 해 가나?

말똥 곶감에, 쇠똥 부치기, 소 오줌 정종에, 모기 뒷다리 산적, 다 해 가지구 가지.

장개는 어디로 가누?

처갓집 정문이 덜썩, 대문이 찌꺽, 문풍지가 푸르르, 농문이 덜컹하는 데. 바깥을 나니 오리 걀걀 하는 데. 망아지 빽빽 하는 데. 참깨 백 석, 들깨 백 석 하는 데. 왕백이 짚신짝 터덜털 끌고, 데릴사위 살러 간다네.

하나 바라구 살다 딸깍 죽으면 어쩌려구? 나는 칠선녀 팔선녀 데리구 살란다.

아이구, 그걸 다 뭐할라구?

다 써먹을 데가 있다네. 몽당발이는 몰아들이구, 씰룩발이는 씰어들이구, 앉은뱅이는 집 봐주구, 이것저것 다 써먹을 데가 있다네. 들어오면 담 안으로 하나 가득, 나가면 담 밖으로 하나 가득, 칠선녀, 팔선녀, 구미호에 삼천궁녀까지 채울란다. 간 데마다 하나씩 낳으니 애비 찾아달라구 지 에미를 조르는데 꽁알꽁알 하며 울지 않겠나. 이것이 내 공알 내력이여. 동 금강, 서 구월, 남 지리, 북 묘향, 사대 명산 치성 발원에 쎄 빠지게 놀구 나서 애비를 찾아줘야지. 어허, 부귀야 덩덩 하잡신다.

아들 낳면 효자 낳고, 딸을 낳면 열녀 낳아, 각성각문 남녀노소 아들딸에 명복 주세. 식구가 늘면 방이 차고, 재산이 늘면 곡간이 차지. 이만하면 너구리발 넉넉하구, 깻잎이 청청하구, 몸은 씻은 팥알 같구, 물 찬 제비 같구, 눈썹도 돋아오는 반달 같구, 입술은 앵두 같구, 만인이 우러르러 보겠구나. 어허, 쳐라! 부귀 덩덩.

연이어서 접시 돌리는 광대가 나와서 버나 한 판을 노는데, 우리는 슬그머니 한두 사람씩 마당을 떠나 주막의 봉노로 돌아가니 방 안은 텅 비었고 장목 목침만 줄줄이 놓여 있습디다. 그들 거의가 각 고을의 대두(隊頭)들이나 소대두(小隊頭)들로서 행수(行首) 스승과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자리였지요. 그때에 자기 순서를 마친 이신통이가 넘치던 흥을 싹 감추고 딴사람처럼 들어와서 저도 제법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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