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전형필(1906~1962)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재가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은수집가다. 10만석 사재를 털어 우리 문화재를 사들여 지켰다. 당대 최고의 감식안인 오세창의 조언을 받아 모았는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기도 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한 국보 12점과 보물 10점 등 명품이 수두룩하다. 간송은 이 귀한 보배들을 두는 집으로 1938년 서양식 2층 건물 '보화각'을 세웠다. 이것이 지금의 간송미술관, 곧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간송미술관은 1년에 딱 두 번, 5월과 10월에 보름씩 소장품을 공개하는 전시회를 연다. 최고의 문화재들을 볼 수 있는 짧은 기회이다 보니, 한번 했다 하면 관객들로 미어 터진다. 지난해 가을 기획전은 4만 5,000여명이 찾았다. 보화각은 지은 지 80년도 더 된 낡고 비좁은 건물이라, 대문 밖 200m까지 줄이 서고 두 시간 이상 기다렸다 들어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좀더 자주 길게 보여달라는 요청이 많지만, 여느 미술관과 달리 처음부터 연구가 주목적이다 보니 전시는 연구 결과를 공개하는 정도로만 하고 있다.
간송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인 올해, 간송미술관의 봄 기획전은 '진경시대 회화 대전'으로 간송을 추모한다. 일요일인 13일부터 27일까지 한다.
간송은 일제의 수탈과 압제가 극심해지던 1930년대에 진경시대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수집했다. 그 까닭을 간송미술관 최완수 연구실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간송은 조선 후기 문화의 절정인 진경시대를 광복 후 문예부흥의 기점으로 삼으려 했던 거에요. 1930년대는 일본 경제가 대호황을 누리던 때라 경매도 활발해서 경매를 통해 많이 구입했지요."
겸재 정선(1676~1720)의 진경산수화로 대표되는 진경시대는 조선 후기 문화가 조선 고유색을 한껏 드러내면서 눈부시게 발전한 시기로, 숙종(1675~1720)에서 정조(1777~1800)대에 걸치는 125년이다. 송강 정철의 한글 가사문학, '구운몽' 등 한글소설, 조선 고유 서체를 이룩한 석봉 한호의 석봉체도 모두 이때 나왔다.
이번 전시는 겸재로부터 시작해 현재 심사정을 거쳐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에 이르는 이 시대 대표적인 화가들과, 그들과 함께 살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많은 화가들의 그림 110여 점을 선보인다. 겸재의 다음 세대인 현재는 중국의 남종문인화풍을 받아들여 조선남종화를 이룩했고, 그 다음 세대인 단원과 혜원은 겸재가 산수화에서 완성한 조선 고유 화풍을 풍속화로 발전시켜 진경시대를 아름답게 마무리한다.
겸재의 그림으로는 6년 만에 다시 공개하는 대작 '풍악내산총람(楓嶽內山總覽)'을 비롯해 20여 점을 전시한다. '풍악내산총람'은 단발령 쪽에서 본 가을 금강산의 웅장한 전경을 한 화면에 압축한 걸작이다. 산수화 외에 고양이, 포도, 수박 그림도 나와 겸재가 산수화만 잘 그린 게 아님을 보여준다. 겸재와 현재, 단원과 혜원 외에 진경시대 화가들로는 겸재 화풍을 따른 이인상 김윤겸, 현재를 따른 이광사 강세황 최북, 진경시대 말기 풍속화가 이인문 김득신 등 10여명의 그림을 볼 수 있다.
간송 50주기 추모전인 성격을 살려 간송이 직접 그린 수묵화와 붓글씨 네 점도 공개한다. 추사 김정희의 그림을 모사한 '방고사소요(倣高士逍遙)', 월탄 박종화와 술을 마시다 취흥에 겨워 간송이 그리고 월탄이 글씨를 쓴 '묵국(墨菊)'에서 간송의 아취와 풍류를 짐작할 수 있다. (02)762-0442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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