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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삶이 야구 같기만 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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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삶이 야구 같기만 하다면

입력
2012.05.0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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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축구가 싫다. 엄밀히 말하면 좋아할 수 없다. 축구에 얽힌 트라우마가 많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해진 최초의 구타는 축구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아이들이 모여 축구를 하는데 골목대장인 동네 형이 축구를 처음 하는 나에게 골키퍼를 시켰다. "골키퍼가 할 일은 딱 하나다. 공이 널 지나가지 못하게 막아라." 어렵지 않게 들렸다. 드디어 축구공이 나를 향해 느린 속도로 굴러왔다. 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공을 불안하게 주시했다. 잔뜩 긴장을 하고 공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그런데 공은 나의 다리 사이를 통과해 유유히 골문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저렇게 느린공도 잡지 못하다니 정말 부끄럽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골목대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그것도 못 막느냐고 소리를 지르며 내 복부를 강타했다. 나는 숨 막히는 고통으로 배를 움켜잡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알베르 까뮈는 어린 시절 축구를 하면서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고 하는데, 나는 축구를 통해 "인생은 갑자기 복부를 강타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 후에도 축구와의 악연은 이어졌다. 축구를 하다 앞니를 다쳐서 한 달 동안 잇몸에 깁스를 하고 죽만 먹으며 지낸 적도 있다. 잇몸에 석고 깁스를 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군대에 가서는 이등병 때 서류를 작성하는데 고참이 특기란에 '축구'라고 쓰라 했다. "저 축구 못하는데요"라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앞으로 잘 하게 될 거다. 제대하는 날까지 축구만 할 테니." 나는 결국 군대에서 축구를 하다 부상을 당해 한 달 동안 다리에 깁스를 하고 지냈다.

하지만 나는 야구를 사랑한다. 야구에 관해서는 좋은 기억들만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어릴 적 역전 홈런을 쳤던 기억을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머릿속에서 재생한다. 그 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운데 낮은 공이었다. 나는 풀 스윙으로 그 공을 걷어 올렸다. '딱'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 공은 창공으로 사라졌다. 나는 펄쩍펄쩍 뛰며 베이스를 돌아 홈으로 들어왔다. 팀원들의 열화와 같은 환영을 받으며. 요새도 잠자리에 들어 눈 감고 이 장면을 떠올리면 한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최근에도 홈런을 친 적이 있다. 조카와 함께 동네 놀이터에서 캐치볼을 하는데 초등학생들이 다가와 "한 게임 하실래요?" 제안을 하기에 "좋다. 그러자." 하고 같이 야구를 했다. 나는 홈런 하나를 포함해 3타수 3안타를 쳤다. 경기가 끝나자 한 녀석이 내게 항의했다. "아저씨, 초등학생 상대로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겉으로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상대가 누구건, 초등학생이건, 성인이건 상관없다. 홈런은 언제나 짜릿하고 그 기억은 평생 간다.'

예전에 누가 칼럼에 이렇게 쓴 것을 봤다. "다른 스포츠는 경기장 바깥으로 공이 넘어가면 노플레이가 된다. 하지만 야구는 경기장 바깥으로 공을 넘기는 것이 최고의 플레이다. 그것이 바로 홈런이다."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내추럴'이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로버트 레드포드가 9회말 역전 홈런을 친다. 경기장 너머로 날아가던 공이 전광판을 때리자 전구들이 폭죽처럼 터진다. 현실에선 말도 안 되지만 영화 역사 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다. 또 나는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를 좋아한다. 정말이지, 야구라는 스포츠는 얼마나 우아하고 감상적인가?

나는 삶이 야구 같았으면 좋겠다. 9회말 역전 홈런 같은 것이 우리네 삶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대적 삶은 축구에 가깝다(축구팬들은 동의 안하겠지만). 피터 한트케가 쓴 소설의 제목은 <패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마치 골키퍼처럼 다가오는 공을 불안 속에서 주시하며 살고 있다. 막으면 다행이고 못 막으면 복부를 강타 당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상상을 한다. 그 골키퍼가 갑자기 배트를 꺼내들어 축구공을 한방에 때려 경기장 바깥으로 훌쩍 넘겨버린다면? 아아, 삶이 야구 같기만 하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심보선 시인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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