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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국 산시성 몐산·핑야오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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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국 산시성 몐산·핑야오고성

입력
2012.05.0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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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하다. 해발 2,000m 깎아지른 절벽 위에 지어진 사찰, 그리고 그 옆에 거짓말처럼 자리잡은 호텔. 공중도시로 불리는 ?x산(綿山) 절벽의 비현실적 풍경 앞에서 현세의 시공간성은 간단히 무너진다.

?x산은 중국의 산둥성(山東省)과 산시성(山西省)을 나누는 거대한 타이항산맥(太行山脈)의 한 갈래다. 산시성의 성도인 타이위안(太原) 공항에서 남쪽을 향해 버스로 2시간 가량 달려 산기슭에 도착, 다시 40분쯤 버스로 산을 오르면 눈 앞에 하늘 도시가 펼쳐진다.

절벽에 매달린 염원, 원펑쓰

?x산 절벽에는 200여 개의 자연 동굴이 있다. 그 모양이 마치 어미 뱃속 같다고 해서 포복암(抱腹岩)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 동굴 안에 불교 사찰인 원펑쓰(云峰寺)가 있다.

"당 태종 때 서안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는데 원펑쓰의 전지초 스님이라는 분이 비를 내리게 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기운이 좋은 사찰로 소문이 나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소원을 비는 곳이 됐습니다."

서남 방향으로 쌀뜨물을 휙 뿌렸더니 비가 내렸다는 전지초 스님의 일화가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원펑쓰가 당나라 때부터 현재까지 서민들의 염원과 소망의 장 역할을 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출산, 결혼, 합격, 연애 등 각기 다른 소원을 지닌 사람들이 몰려와 손가락 만한 크기에 한국 돈으로 몇 만원씩 하는 향초로 앞다투어 사찰을 장식해 놨다. 심지어 절벽 틈새마다 면봉과 이쑤시개가 빼곡히 꽂혀 있는데 허리가 아픈 사람들이 이곳에 이쑤시개를 똑바로 세워 꽂아두면 허리가 낫는다는 속설 때문이란다.

소망이 절박해질수록 그것을 비는 장소도 아찔해진다. 이곳 암벽 한가운데에는 대체 어떻게 달았는지 모를 등과 방울들이 드문드문 매달려 있는데 소원이 있는 사람이 등을 달고 성취된 후에는 그것을 방울로 바꿔 단다고 한다. 등을 달다가 떨어져 다친 사람도 부지기수라고 하니 절절함을 넘어 서늘한 한이 느껴질 지경이다.

질긴 염원들을 뒤로 하고 내려오면 공중호텔로 불리는 원펑서원(雲峰墅苑)에서의 하룻밤이 기다리고 있다. 해발 2,000m 위 호텔이라는 사실 하나에 마음이 들떠 부족한 시설과 어설픈 서비스에도 너그럽게 눈감게 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고작 열두 살 정도 밖에 안돼 보이는 계집애들이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모습에는 눈길이 머물지 않을 수 없었다. 일행 중 중국통으로 불리는 사람이 살짝 귀띔을 한다.

"중국에도 취업 연령에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정부가 사실상 눈 감아주고 있죠. 저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유흥업소에 나가야 할 테니까요."

식당 벽에 기대어 눈치 없이 까르르 웃는 소녀들 앞에서 서비스의 질을 따지는 것이 우습다.

명청대의 번영을 증언하다, 핑야오 고성

?x산에서 다시 타이위안 방향으로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올라가면 중국 5대 고성 중 하나인 핑야오(平遙) 고성에 닿는다. 주(周)나라 시대 착공해 명∙청(明淸)시대 보수작업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핑야오 고성은 성곽만 남아 있는 여느 고성들과 달리 내부의 상가와 가옥, 은행 등이 거의 그대로 보존돼 있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지금도 조상의 뒤를 이어 고성 안에 거주하는 인구가 50만명에 이른다.

정방형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핑야오 고성 안으로 들어가면 시장관리사무소 격인 3층짜리 스러우(市樓)가 예전의 번영을 말해준다. 이 스러우를 중심으로 사통발달 연계된 상가가 조성돼 있는데 이곳이 바로 성내 최대 번화가인 명청대 거리다. 명청 시대에 가장 흥했던 이곳은 지금도 휴일과 명절이면 몰려드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시골 야시장답지 않게 밤 늦도록 불을 밝히고 흥청대는데 간이 테이블을 바깥에 내놓은 노천식당에서 도삭면(刀削面ㆍ반죽을 칼로 날렵하게 베어 끓는 물에 빠뜨려 익혀 먹는 면)을 맛보는 것도 좋고, 용도 없는 물건이 수북이 쌓인 골동품상을 멍하니 구경하는 것도 좋다. 낡은 기와를 얹은 옛 상가들 사이로 간혹 마사지숍과 끈적한 팝송이 흘러나오는 웨스턴 바도 보인다. 활기 넘치면서도 호객 행위가 거의 없다시피 해 중국의 옛 야시장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핑야오 고성 내 가옥들을 자세히 보면 문이 작고 내부가 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 주민들의 성격이 드러나는 부분이죠. 마음을 쉽게 열지 않지만 한 번 친해지면 정을 깊게 맺는 사람들이에요. 핑야오가 개방 후에도 크게 상업적으로 변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핑야오에서 꼭 체험해야 할 것은 객잔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이곳에는 호텔을 짓는 것이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대신 고택을 개조한 객잔이 관광객들의 쉼터가 돼주고 있는데 에어컨과 온수시설 등을 갖추지 않으면 허가를 안 내주기 때문에 큰 불편함 없이 이용 가능하다. 봄철에 고적한 객잔 마당에 앉아 있으면 버드나무 솜털이 눈처럼 내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 여행수첩

●인천과 타이위안을 오가는 아시아나 항공 전세기가 6월 2일부터 10월 20일까지 일주일에 한 차례씩 운항한다. 한국과 중국 모두 매주 토요일 출발하고, 4박5일 일정으로만 판매한다. 한국 총판 레드팡닷컴 (02)6925-2569). 전국 여행사에서 연합해 판매한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경우 살 마음이 있을 때만 가격을 흥정하도록 한다. 가격을 깎아 놓고 사지 않는 것은 도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상인들이 담합해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산서성의 6~10월 기온은 한국과 거의 비슷하다. 다만 몐산은 해발고도가 높아 일교차가 다소 큰 편이니 한여름에도 가벼운 점퍼 정도는 가져가는 것이 좋다.

진중(晋中)=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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