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 한 달 넘게 지났는데도 멘붕이 크긴 크다. 꼭 투표할 때만 그놈의 대한민국 1%가 되고 되는 신세니 예측했던 일이었다. 당연히 이번 선거 후에도 멘붕이 오려니, 미리 마음을 먹었건만 아무리 굳게 다잡아도 와르르 무너졌다. 첫 선거에서 권영길 의원에게 투표했을 때부터 이럴 때만 대한민국 1%가 되는 길은 창창하게 열려 있었나보다. 나중에 우연히 권영길 의원을 뵈었을 때 왜 대통령이 못 된 거예요, 손 흔드는 모습만은 완전히 현직 대통령이신데 왜, 왜 하고 부르짖었더니 그는 짧게 "미안해"라고만 해서 내가 더 미안했다.
그 때부터 네 마음에 드는 후보 찍었다간 그거 죽은 표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생표는 뭐고 사표는 뭔지 모르겠으나 나의 직접투표권을 낚아챌 심사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남의 표 가지고 죽은 표 이야기 많이 하는 사람들은 흔히 비판적 지지, 혹은 야권연대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말은 근사하지만 그냥 네 표 내놔, 하는 말이다. 선의만은 진실일 것이라 믿고 싶지만 내 표의 생사여탈권까지 관장하려는 것이 마음에 거슬린다. 또 그들은 우리 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데 아무래도 그 '우리'가 도대체 누구인지 모르겠어서 별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런 거리끼는 마음이 얼굴에 나타날라치면 그들은 귀신같이 알아채고 나를 다그친다. 지금 너는 이회창 편이냐, 이명박 정권 이대로 좋단 말이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없냐고 몰아붙이는데 그럴 리가. 전라도 사람 보기를 원수 여기듯 하시던 부모님 슬하에 자라나 철들고 나서는 1번 찍지 못하게 하려고 선거 때마다 어색한 애교를 부리며 한우를 대접한 전력이 있으니, 자유당 때 막걸리 선거가 따로 없는 셈이다. 아버님 생전에는 스무 살 젊은이답게 아버지 창피해서 못살겠어요, 하며 조선일보 끊자고 자해 소동을 벌여 절독에 성공할 정도로 혈기 왕성했다. 돌이켜 보니 낯이 뜨거우나 후회는 없다. 그러나 친척들 앞에서는 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분들은 여전히 상추 쌈 싸 드시다 말고 오세훈이 그래도 훌륭한 사람 같다, 라는 말씀을 하셔서 나를 체하게 만든다. 그러다 얼마 전 보수를 자처하는 이모들 중 두 분이 각자 한 번은 김대중, 한 번은 노무현에게 투표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좀 덜해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투표한 사람이 이 진성 TK 일가에게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사람들이 '저쪽'에 대비해 결집하자며 내 표 내놓으라고 말할 때 그 '저쪽'이 바로 이 사람들인데, '저쪽'에서 이런 표가 나왔을 줄이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투표한 이모는 쭉 대구에서 살고 있으니 아마 이모도 대구에서는 나처럼 1%에 속했을 것이다. 설마 우리 주위에 민주당에 표를 던질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에게도 몇 년 지난 후에야 나 사실 그때 김대중 찍었어, 라고 고백해서 모두 깜짝 놀랐다 한다. 최근에야 알게 된 나는 "이모 왜 그랬어요?" 하고 물으니 이모는 짧게 대답했다. "그냥, 그 사람 너무 외로워 보였어."
의외의 대답이었다. 우리는 전라도 사람 안 좋아하지만 평생 자기가 믿는 바를 위해서 그렇게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까 한 번은 찍어주고 싶었어. 이번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찍은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서울시장 누구 찍었어요? 난 보수야, 나경원 찍었지. 그러면 옛날에 왜 노무현 찍었어요? 당을 넘어서 개인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좋았어. 국회의원 때 이미지도 강하게 남아 있고, 환경부 장관 할 때도 좋게 생각했거든. 그럼 박원순 시장을 안 찍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없었어. 더 많이 알았다면요? 누가 알려줬으면 달라졌을 수 있지. 전화를 끊고 나서, 빗자루 꽂아놔도 당선된다고 모두 좌절하는 동네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아직 절망할 때가 아니다. 바꾸고 싶다면, 일단 우리 친척들을 상대로 막걸리 선거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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