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물이 풍부해서 제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로 꼽혔던 강정마을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된 5년간 사람 사는 마을이 아니게 됐습니다. 기지 건설을 두고 찬반이 갈려 공동체가 산산조각 났습니다. 어제 친구가 바로 앞에서 등을 돌립니다. 기지 건설 후에도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9일 오후 서울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 앞. 해군기지 건설로 논란에 휩싸여 있는 강정마을의 강동균(56) 마을회장이 현지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대표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해 온 그는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으로 대다수 주민들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마을을 파괴하는 국가폭력에는 5년이 아니라 50년이 걸려도 저항하겠다"고 말했다. 뙤약볕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앉은 20여 명의 학생들은 강 회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평화와 민주주의: 제주 강정마을 이장님에게 듣는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거리수업은 지난해 8월 성균관대에서 강의 배정을 철회 당한 후 10개월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류승완 교수 측이 기획한 것이다. '대학교육 개혁을 위한 거리수업: 철학과 민주주의'라는 제목 아래 매주 다른 현장의 목소리를 초청한다. 류 교수는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현실에 대해 대학이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이런 수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이 자리에서 "평화는 힘의 논리로 지켜지는 게 아니다"며 "국가 안보를 위한다는 해군기지 건설은 동북아 긴장을 고조시키고 각국의 군비 증강으로 이어져 오히려 국가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점점 악화하는 마을 상황을 겪으니 평화가 뭔지 이제 알겠다. 누구나 자유롭게 살고 이웃끼리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처럼 작은 게 평화"라며 "강정마을의 평화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정부와 해군은 기지 건설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1시간 남짓 진행된 수업 후 학생들은 "강정마을 문제는 서울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어서 언론 보도나 인터넷 등을 통해서밖에 접할 수 없었는데 당사자의 생생한 말로 들으니 그 심각성이 와 닿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치외교학과 10학번인 손기열(22)씨는 "국가 안보라는 명분으로 사람들의 삶을 파괴했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신소재공학부 06학번인 박유호(26)씨는 "정부가 9,000명 이상의 경찰을 동원해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과 시민운동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폭력 등 인권 침해가 일어났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뜻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 15일부터 시작하는 축제 기간에 강정마을 문제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하겠다"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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