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쓰나미가 홍콩을 휩쓸고 서울로 숨가쁘게 북상하던 1997년 초가을. 일본이 아시아통화기금(AMF)을 제안하고 나섰다. 홍콩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서다. "외환위기 발생 시 IMF의 긴급 금융지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아시아 국가들이 상호부조 하는 AMF를 통해 IMF를 보완하자"는 취지였다. 반응은 썰렁했다. 미국은 자국 주도의 국제금융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여겼고, 중국은 일본의 리더십 자체가 못마땅했다.
■ AMF 설립안은 곧이어 우리나라까지 환란에 휩쓸리면서 끝내 와해됐다. 하지만 당시 구제금융 조건으로 IMF의 혹독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요 당한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선 IMF와 별도로 역내 국가의 위기 시 금융지원에 나설 아시아판 '최종 대부자(Lander of Last Resort)'가 구축돼야 한다는 공감이 더욱 확고해졌다. 가혹한 긴축, 국가자산의 헐값 매각, 무지막지한 구조조정 등 IMF 처방에 대한 반발인 셈이었다.
■ 아시아의 암중모색이 결실을 맺은 건 2000년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3국(한ㆍ중ㆍ일) 재무장관회의 때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로 명명된 당시 합의는 한ㆍ중ㆍ일 3국과 ASEAN 회원국들이 각각 양자간 통화스와프 협정을 통해 상호 지원키로 한 것이다. 이후 CMI는 2009년 양자협정을 넘어 IMF처럼 위기국에 대한 집단 지원시스템을 도입한 '치앙마이 다자(多者)이니셔티브(CMIM)'로 진화한다.
■ 필리핀 마닐라에서 최근 열린 제15차 ASEAN+3국 재무장관회의는 CMIM의 금융지원 규모를 직전의 두 배인 2,400억 달러로 크게 늘렸다고 한다. 우리가 97년에 IMF로부터 받은 1차 구제금융액이 210억 달러이니, 꽤 든든한 지원 여력을 갖게 된 셈이다. 물론 이 금액은 통화스와프 협정에 따른 회원국 전체의 지원 약속액에 불과하다. 또 실제 지원엔 여전히 IMF의 간섭을 받아야 하는 한계도 있다. 그래도 CMIM 규모확대는 아시아의 독자적 위기관리능력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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