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월)→3.1%(2월)→2.6%(3월)→2.5%(4월).'
매달 낮아지는 추세나 숫자로만 보면 국내 소비자물가는 이제 완연히 안정권에 접어든 듯 하다. 작년 내내 "안심할 수 없다"를 되뇌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조차 최근 "이제는 물가가 안정기조에 접어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할 정도다.
하지만 2%대 물가에는 여전히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불편한 진실'이 여럿 숨어있다. 올렸어야 할 물건값을 잠시 미뤄둔 대가나 통계가 주는 착시현상 등을 감안하면 여전히 마음 놓을 단계는 아니라는 얘기다.
재정부는 지난 1일 내놓은 물가동향 분석자료에서 4월 소비자물가 안정세의 첫번째 요인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물가안정노력'을 꼽았다. 다행히 국제유가 상승세가 주춤하는 사이, 정부의 물가대책이 효력을 발휘했다는 설명이었다. 실제 4월 2.5%의 상승률 중 전기ㆍ수도ㆍ가스와 공공서비스 분야의 기여도는 각각 0.28%포인트와 0.08%포인트에 그쳐 그 동안 정부가 공공요금 인상을 막아왔던 효과가 선명히 드러났다.
문제는 언제까지 공공요금을 누르고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전기료와 가스값 인상을 최소화했던 한전과 가스공사는 작년에만 각각 10조4,000억원, 5조7,000억원의 막대한 부채 증가세를 기록했다. 물가안정을 위해 빚을 늘린 셈인데 정상화를 위해선 조만간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현재 100원짜리 제품을 87원 가량에 손해 보며 팔고 있는 두 기업의 원가보상률을 감안하면 최소 10% 이상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공공요금 10% 인상은 소비자물가를 2.24%나 끌어올릴 만큼 파괴력이 크다. 결국 정부는 "올 하반기까지 인상을 최대한 자제시키겠다"며 물가를 잡는 대신 공기업 부채증가를 택할 태세지만 이 경우 공기업 부실화는 더 심각해질 게 뻔하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다음 정권의 최대 불안요인 중 하나가 공공부채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물가를 억누르면서 곳곳에 부작용이 늘어가고 있다. 작은 음식점들은 가격 인상 대신 양을 줄이는 편법을 쓰고, 기업들은 오른 생산원가를 제품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니 수익감소를 메우기 위해 제품의 질이나 투자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길게 보면 소비는 물론 임금이나 고용에도 차질이 생긴다는 얘기다. 총선 이후 액화석유가스(LPG) 업계를 필두로 CJ제일제당, 오뚜기, 동원F&B, 스타벅스 등 가공식품 업계가 잇따라 가격 인상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기업들의 인내력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 준다.
2%대 물가도 숫자 그대로 보기 어렵다. 물가가 크게 올랐던 작년 3,4월보다 2%대로 더 올랐다는 의미일 뿐, 물가가 급등하기 전과 비교하면 체감물가 상승률은 훨씬 높다. 실제 소비자물가 지수 기준으로 작년 1월(102.2)과 비교한 올 4월 물가(106.0)는 3.7%나 올랐다.
현대경제연구원 임희정 연구위원은 "경기가 회복되면 어느 정도 물가도 같이 올라줘야 경제 전반에 부작용이 쌓이지 않는다"며 "최근 물가는 '안정'보다는 '보류'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물가부담은 여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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