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경(55)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과거에도 은행돈을 쌈짓돈처럼 사용하다 기소됐지만, 법원의 선고유예 판결로 저축은행 대표이사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선고유예 판결이 아니었다면 김 회장은 대표직을 박탈당했다는 점에서 법원의 미온적 처벌이 김 회장의 비리를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거세다.
김 회장은 2006년 3월 불법대출 혐의로 제주지검의 수사를 받았다. 2001년 5월 대표 지위를 이용해 13억여원의 차명대출을 받은데 이어 2003년 4월까지 7회에 걸쳐 37억4,360만원의 불법대출을 받아 제주시 콘도 공사에 사용한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1999년 미래저축은행의 전신인 대기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한 직후부터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제주지법은 1심에서 김 회장에게 벌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개정 전 상호저축은행법상 출자자 대출 금지 위반죄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선고할 수 있었는데, 1심은 벌금형을 택했다. 항소심인 광주고법 제주재판부는 "대출금을 모두 상환했고, 미래저축은행 대표로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은행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며 선고유예라는 더욱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
벌금형 선고유예로 김 회장은 극적인 반전을 맞았다. 상호저축은행법 또는 금융 관련법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은 사람은 임원(대표이사 및 회장직 포함) 자격이 박탈된다. 1심 벌금형으로 위기에 처했던 김 회장은 2심에서 선고유예를 받고 대표이사직을 유지, 지금까지 미래저축은행을 경영할 수 있었다.
그 사이 김 회장은 과거 기소됐던 범죄 내용을 훨씬 뛰어넘는 범죄를 저지른다. 1,500억원대의 차명대출을 받아 골프장 건설에 사용하고 고객예금 200억원을 빼돌리는 등 수천억원대의 불법대출 및 횡령을 일삼았다. 결국 미래저축은행의 자산 건전성은 바닥에 떨어져 영업정지를 당했다.'범죄는 예견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김 회장에게 관대했던 법원의 판결이 바늘 도둑에 그칠 수 있었던 그를 소 도둑으로 만든 셈이다.
법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재범 가능성은 선고시 고려 요소 중 하나지만, 당시 형량의 적정성 여부를 현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며 "당시 법원은 재범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은행이 회생할 기회를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이 저축은행의 공적 기능을 마비시키는 중대 범죄인 불법대출에 대해 지나치게 가볍게 판단했고, 처벌을 통한 범죄 예방이라는 법원의 기능에 소홀했다는 지적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한 검찰 관계자는 "상호저축은행법에 별도로 임원 자격 조항을 넣어둔 것은 은행의 건실한 경영을 위해서는 임원의 도덕성과 투명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라며 "법원은 이를 간과한 채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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