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돈 200억원을 인출해 중국 밀항을 시도하다 붙잡힌 김찬경(55)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지난달 초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거액을 빼돌리려다 도난 당하자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지인이 도난 당한 것처럼 꾸며 경찰에 신고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8일 충남 아산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8일 김 회장과 알고 지내던 아산의 한 일식집 주인 박모(47)씨가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마을에 세워둔 자신의 승합차에서 3,500만원을 도난당했다고 신고했다. 경찰 수사결과 이 차량은 김 회장이 전날 서울에서 타고 온 승용차이며 도난 당한 돈도 김 회장의 돈으로, 그 규모를 축소 신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씨는 경찰에서 "김 회장의 부탁을 받고 '생선 매입대금을 승합차 안에 보관하다 도난당했다'고 거짓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 회장이 서울에서 승용차에 거액을 싣고 자신의 별장인 외암민속마을 내 건재고택에 도착, 차를 세워놓고 외부로 나간 사이 별장관리인 A씨가 차량 유리를 깨고 돈을 훔쳐간 것으로 보고 A씨의 행방을 쫓고 있다. 김 회장의 별장 관리를 해온 A씨는 박씨가 운영하는 일식집 종업원으로도 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 회장이 도난 사실을 직접 신고하지 않고 박씨를 시켜 신고한 점으로 볼 때 이 돈이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고, 실제 도난 액수도 신고액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은 김 회장이 도난당한 금액이 56억원에 이른다는 첩보를 입수해 확인 중이다.
8일 김 회장을 구속한 대검찰청 저축은행비리합동수사단측은 이에 대해 "도난당한 돈의 규모는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김 회장이 정말 도난을 당했는지 아니면 돈를 빼돌리기 위해 허위 신고를 했는지 여부부터 우선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재고택은 국가중요민속자료 제233호로 지정된 고건축물로 김 회장은 10년 전 외암민속마을 주택 10동을 매입한 이 고택에서 자주 술판을 벌여 주민들의 눈총을 받아왔다.
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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