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 경선 파문이 각종 정치사회적 이슈와 논란거리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게다가 진보진영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가중되면서 진보ㆍ개혁적 가치가 실종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우선 민생 현안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와 관심도가 현저히 축소됐다. 최근 4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면서 각종 비리와 부패의 고리가 드러나고 있고, 금융당국의 관리ㆍ감독 소홀과 이로 인한 서민들의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은 내부 문제로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고, 민주통합당은 비상대책위와 자체 특별위원회 활동을 통해 여론을 환기시켜 보려 하고 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6년 만에 발생한 광우병 사태도 마찬가지다. 미국 현지에 파견된 정부 조사단이 광우병이 발생한 농장조차 방문하지 못할 만큼 조사 과정이 부실했고, 일부 시민은 촛불을 들고 나섰지만 정치권에선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고위당직자들이 회의석상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실세들이 줄줄이 구속된 파이시티 개발사업 인허가 문제와 관련해서도 여야 정치권은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민주당이 원내대표 경선 등으로 어수선한 사이에 파이시티 문제가 제대로 지적되지 못했다"면서 공세를 예고했지만, 통합진보당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기왕에 터진 권력형 비리의 한 줄기 정도로 묻혀 갈 공산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복지 확대와 양극화 해소 등 진보ㆍ개혁적 가치도 동반 실종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진보를 표방한 공당(公黨)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부정ㆍ불법이 자행된 데다 이에 대처하는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행태가 공분을 사면서 진보진영 전체의 도덕성과 정당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것이다.
야권의 한 인사는 "국민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뿐 아니라 보편적 복지나 비정규직 해법 등 민생 현안들에 대해서도 통합진보당의 주장이라면 우선 고개부터 가로젓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민주당 내에서 야권연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론이 대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라고 말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통합진보당 사태가 초래한 본질적인 위기는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진보에 대한 왜곡되고 편향된 인식을 심어줬다는 점"이라며 "이제는 적당한 수습이 아니라 통합진보당 당권파를 제외한 진보진영의 쇄신과 재통합으로 새로운 진보로 거듭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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