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이 투지를 불태우며 싸웠던 상대 중의 하나는 '주류 언론'이다. 노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요트 동호회 활동 좀 한 걸 두고 '호화 요트에서 질펀하게 즐겼다'는 식으로 악의적 보도를 해댄 한 신문사의 행태가 기존 언론에 대한 환멸을 낳았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싸움은 주류언론 중심의 기자실 폐쇄와 인터넷 매체 등 '비주류 언론'에 대한 정부 브리핑룸 확대 개방 등으로 전개됐다. 정권은 이런 조치가 주류언론의 여론 독점구조를 깨고 국민의 알 권리를 신장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류언론의 '패악질'을 없애겠다는 노무현 정권의 싸움은 공기(公器)로서 언론의 전통적 기능과 가치를 송두리째 훼손하는 패착으로 이어졌다. 정권은 기자와 취재원, 언론과 정부 간에 기사를 뛰어 넘어 존재하는 복잡미묘한 상호관계에 대해 무지했거나, 그 가치를 무시했다. 기자는 단순히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고스톱 치다가 보도자료나 베껴 쓰는' 수동적 존재에 불과했다. 따라서 공식 브리핑 외에 당국자에 대한 기자의 개별 취재는 금지됐고, 언론은 객관적 비판자로서 국정의 파트너가 아니라, 적당히 관리해야 할 '시끄러운 개구리들'일 뿐이라는 인식이 정부를 오염시켰다.
빛 바랜 노무현 정권 얘기를 새삼 되뇌는 건 그 때의 잘못이 지금까지 확대재생산 되면서 심각한 해악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정파적 입장에 매몰돼 중구난방으로 목소리만 높이게 된 매체 현실이나, '나꼼수' 같은 흥미 위주의 토크쇼가 마치 대안언론이라도 된 듯 득세하는 혼란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언론의 여론 결집 기능에 대한 불신과 SNS의 급속한 확산을 틈타 이젠 정부가 직접 여론의 흐름을 조작하려는 가공할 만한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토해양부 얘기다.
국토부는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 운영권을 15년간 민간에 임대하는 방안을 지난해 말부터 본격 추진해왔다. 코레일이 독점하고 있는 철도운영권을 민간에 개방해 경쟁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전반적인 서비스 향상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철도의 특성을 감안해 비상 시 정부의 통제관리권만 확보된다면 검토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문제는 국토부의 빗나간 정책홍보다.
한국일보 보도(5월2일자 2면)에 따르면 국토부는 최근 본부 및 산하기관에 '철도 경쟁체제 트위터 홍보협조 요청'이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직원들에게 매일 개인계정을 이용해 트위터에 운영권개방 찬성 글을 올리라는 게 골자다. 장ㆍ차관에 일일 실적보고를 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파급력이 큰 리트윗 위주로 할 것과, 트위터에 올릴 예시문안까지 제시됐다. 'KTX, 민간한테 임대해 주는 것도 민영화인가요?'라든지, '왜 우리는 세금으로 코레일 노조의 비싼 월급을 보조해 줘야 하는가? 파업 잘 하라고?'하는 따위다.
국토부는 문건 작성은 인정하면서도 여론조작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직원들의 정책홍보를 여론조작이라고 보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박까지 했다. 정작 놀라운 건 트위터에 찬성 글을 올리도록 지시한 사실보다, 그것을 정당한 '정책홍보'라고 주장하는 국토부의 인식이다.
물론 정부의 정책 추진엔 홍보가 뒷받침 돼야 한다. 하지만 그건 관련 정보를 정확히 알리고, 논리적으로 국민을 설득하겠다는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그나마 공정한 비판적 전통과 상식적 게이트키핑 과정이 작동하는 언론이 정책홍보의 주력 창구가 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지 않고 정부가 이해 당사자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SNS의 난상토론장에 나서 감성적인 여론몰이에 나서는 건 정책의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매우 위험한 탈선이 아닐 수 없다.
이율곡(1536~1584) 선생은 일찍이 저잣거리에 함부로 나도는 부의(浮議)를 정치가 받들어야 할 참된 여론과 구분하여 경계했다. 하물며 정부가 직접 부의를 조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스런 여론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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