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살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넉 달 간 중ㆍ고교생 7명이 목숨을 끊은 대구 지역의 사례가 단적으로 말해 준다. 대구의 연 평균 자살 학생 수에 육박하는 수치다. 이른바 '왕따'와 학교폭력 피해자 뿐 아니라 공부 잘 하고 왕따도 아닌 것으로 알려진 여고생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한 초·중·고교생은 모두 150명.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도 자살이었다. 우리나라 청소년 10명 중 1명은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통계청의 최근 자료도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비상이 걸렸다. 나름의 대책을 내놓고 사태 수습을 시도하고 있지만 묘안이 눈에 띄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우리 아이들을 자살로 몰아가는 근본 원인을 먼저 파악해야 하며, 청소년 투신의 확산을 막는 단ㆍ장기 처방도 함께 시행할 것을 강조한다. 최인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청소년들의 극단적인 선택은 학업 스트레스, 부모와의 관계, 학교 폭력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자살 징후가 보이는 학생의 조기 발견과 지원,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 증진, 인성과 사회성 제고를 위한 교육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우울증 정기 검사를 실시하고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정신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사회가 도와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보살핌'을 제공하는 게 자살 예방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 최인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자살 징후 조기 발견·치유가 가장 중요…부모 관심·대화가 비극 예방 '백신'역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은 과연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떤 꿈을 꾸고 있으며,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최근 계속 보도되고 있는 청소년 자살 기사들을 접하다 보면, 안타까움과 함께 이와 같은 질문이 무의미해짐을 느낀다. 미래 인생의 목표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가며, 그 목표를 향해 정진할 시기가 청소년기가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통계청의 '2012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청소년(15~24세)의 사망원인 중 1위는 '고의적 자해'(자살)로 인구 10만명 당 13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청소년 자살은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학업 관련 요인이다. 15~19세 청소년의 경우 절반이 넘는 53.4%가 성적 및 진학 문제로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고 한다. 스트레스의 대부분(55.3%)도 공부 문제다. 학창시절에 각기 다른 재능과 적성이 인정되고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무한경쟁과 한 줄 서기 만이 강조된다. 우리 청소년들은 힘겹다.
두 번째는 부모와의 관계이다. 청소년기는 그 이전보다 부모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시기이지만, 여전히 부모의 큰 영향권 아래에 있다. 하지만 부모와의 대화 시간이 매우 짧을 뿐 아니라 부모에게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지 않는다는 비율도 34.3%에 이른다. 부모로부터 공감 받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다. 설령 대화를 나눈다고 하더라도 주로 공부와 진로 문제에 한정된다. 우리 청소년들은 외롭다.
세 번째는 학교폭력이다. 학교폭력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학교폭력의 양상이 점점 흉포화, 저연령화 돼가고 있다. 학교폭력이 청소년 자살의 원인이 되는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폭력의 내용을 보면, 남학생들은 신체 폭력, 금품 갈취 등 겉으로 드러나는 사례가 많고, 여학생들의 경우는 따돌림이나 욕설과 같은 사례가 많다. 최근 들어서는 소위 '빵셔틀'이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 작은 심부름부터 숙제, 게임 레벨 올려주기, 심지어 아르바이트도 강요 받고 있다. 우리 청소년들은 괴롭고, 두렵다.
이처럼 힘겹고, 외롭고, 괴롭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우리 청소년들이 자살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국가의 오명을 벗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04년에 자살예방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지난해에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실효성은 아직 제한적이다.
청소년 자살예방을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 자살 징후가 보이는 학생의 조기 발견과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올해부터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 정서‧행동발달 선별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고위험군 학생들에게는 Wee센터나 정신보건센터에서의 도움도 지원한다. 하지만 이를 담당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인프라가 매우 부족해 실효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지원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두 번째, 부모자녀관계 증진을 위한 부모교육이나 부모상담 시간의 확보가 요구된다. 청소년기 자녀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자녀와의 대화 방식, 부모자녀 간의 갈등해결 방식 등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아버지의 참여가 절실하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아버지와의 관계가 자녀의 정신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되고 있다.
세 번째, 학생들의 인성과 사회성 증진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인지 위주의 교육에 매몰되어 있다 보니 스트레스 해소 능력이나 학교폭력과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청소년들 내면의 건강을 증진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도록 교육 및 상담은 물론 다양한 체험 활동이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도록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덧붙여 우리 청소년들이 꿈을 말할 수 있는 사회, 그 꿈을 펼쳐 나갈 수 있는 사회문화 조성을 위해 우리 모두의 노력이 요구된다. 그런 사회가 청소년이 행복한 사회이며, 청소년이 행복한 사회가 행복한 우리 미래의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
"우울증 검사, 낙인 효과보다 효율성 커…희망과 보살핌에 대한 믿음 심어줘야"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세계 1위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도 자살이다. 하루에 1명의 10대 청소년이 자살로 사망하고 있다. 자살에까지 이르지는 않더라도, 청소년 10명 중 1명 (정확히는 8.8%)은 자살에 대해 생각한다고 한다. 이 수치를 10대 전체 인구 수(약 660만 명)에 대입하면, 매년 약 60만명의 청소년이 자살 위기에 노출된다고도 상정해 볼 수 있다. 이 수치를 보면, 청소년 자살을 예방하는데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자살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우울증과 같은 의학적 원인이나 학업 스트레스, 교우 관계에 문제가 있거나 가정 불화로 인해 정서적 지지 체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자살 위험은 높아진다. 개성이 존중되지 못하고 다양성이 무시되는 교육 환경, 성적과 입시 위주의 교육도 청소년 자살의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인간의 본질적 가치보다 물질적 성과를 더 중시하고, 경쟁만을 강조하면서 약자에 대한 배려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자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의 자살이 정서적으로 취약한 청소년에게 모방 자살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는 대책은 우울증에 대한 정기 검사다. 그런데 우울증 검사가 청소년에게 낙인 효과를 일으켜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우울증 검사가 단순히 우울증 환자를 가려 내기 위한 기능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우울증 검사는 개인이 지각하는 마음의 고통을 반영해 주는 가장 훌륭한 검사 도구 중 하나다. 따라서 이 검사를 환자를 가려내는 도구로만 단정짓지 말고, 마음의 상처와 고통이 있는 청소년들을 효율적으로 확인하고 도와주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청소년 중에는 마음의 고통이 심해도 혼자서 속으로 삭히거나, 도움을 받고 싶어도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의 위기를 먼저 알아봐 주고 선제적으로 도와줄 필요가 있다.
또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마음 건강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을 키워 주는 것도 중요하다. 정기적으로 자살 예방 교육을 시행하고 청소년들 사이에 생명 존중 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교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사람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스트레스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분노를 조절하고 심리적 위기 상황에서는 어떻게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교육해야 한다. 정신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생활 습관을 익히고,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도록 도와주는 삶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청소년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친구에게도 관심과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이 힘든 친구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자살 징후는 어떤 것이며 그런 친구를 보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교육하면 왕따나 폭력 문제도 줄일 수도 있고 건강한 또래 집단을 형성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자살과 관련된 요인들이 복잡해 보여도, 본질적으로는 희망과 보살핌이라는 두 가지 변수의 함수로 모두 설명될 수 있다. 인간은 정신적 위기 상황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절망감을 느끼고, 누구도 자신을 돌봐줄 수 없다는 느낌에 사로 잡힐 때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청소년 자살 예방을 위해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고 고통 속에서도 필요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확신할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노력하는 것이다. 청소년 자살에는 전문가와 비전문가,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 전국민 모두가 자살 예방 전문가라는 인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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