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유럽 5개국(프랑스 그리스 세르비아 독일 이탈리아)에서 실시된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는 이념과 무관하게 기존 정치권의 정책에 반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승리를 거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과거 원내진출은 꿈도 꾸지 못했던 급진주의 정당이나 신생 정당들이 최근 반 긴축 여론을 등에 업고 대거 중앙과 지방 의회에 진출하는 기회를 잡았다.
정치 지형도가 가장 급격하게 바뀐 나라는 재정위기와 긴축정책의 고통이 가장 컸던 그리스다. 총선을 치른 그리스 유권자들은 당의 정강이나 이념은 무시한 채 철저히 긴축에 찬성이냐 반대냐를 기준으로 표를 행사했다. 그 결과 중도성향 정당들이 몰락하고 극좌와 극우 정당이 동시에 대약진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2009년 총선에서 13석을 얻었던 극좌 계열 군소정당 시리자는 52석으로 의석을 4배나 늘리며 제2당의 반열에 올랐다. 구제금융 재협상과 긴축정책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운 시리자는 연정협상 결과에 따라 수권정당의 지위를 획득할 수도 있다. 공산당도 26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신나치 성향 극우정당인 황금새벽당은 단숨에 원내진입 최소득표율인 3%를 넘는 21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1993년 정당 등록을 이후 첫 의회 진출이다.
누적된 국가부채 때문에 그리스의 다음 타자로 지목돼 온 이탈리아의 지방선거에서도 이변이 속출했다. 942명의 시장과 시의원 등을 뽑는 이번 선거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연립정부에 참여했던 자유국민당(PDL) 등 기존 정당의 몰락으로 요약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긴축 반대가 핵심 쟁점이었던 프랑스 대선이나 그리스 총선과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부패한 정치권을 응징해야 한다는 여론이 표심을 압도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신생ㆍ군소 정당의 약진으로 이어졌다. AFP통신에 따르면 유명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가 이끄는 신생정당 ‘오성(五星) 운동’은 북부 도시 파르마에서 20%의 지지율을 얻었고, 베네토 지방의 사레고 시장 선거에서 승리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하원에서 22석을 갖고 있는 이탈리아 가치당은 반부패를 앞세워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서 40% 이상의 지지율을 확보했다.
독일 슐레스비히 홀슈타인주 지방선거에서도 신생정당의 선전이 돋보였다. 연정 파트너인 기민당과 자민당은 지지율이 절반에도 못 미친 반면, 지적재산권 제도 개혁과 무상교육 등의 혁신적 공약을 내세운 해적당은 8%의 지지율을 확보해 원내 입성에 성공했다.
17년 만에 좌파 대통령을 배출한 프랑스는 다음달 총선에서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이 15년 만에 원내에 입성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대선 1차투표에서 17.9%의 득표율을 올리며 돌풍을 일으킨 국민전선의 당수 마린 르펜은 유로존 탈퇴와 프랑화(貨) 부활을 주장하고 있다. FN이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한다면 프랑스 대외정책은 더욱 강경한 노선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