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 5일 국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의는 정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집단행동을 서슴지 않고 1970~80년대의 운동권 관행을 답습하고 있는 당권파의 비민주주의적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우선 당내 행사에서 애국가 부르기를 거부하는 관행은 국민 정서와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안건을 놓고 표결할 때 자신의 이름표를 들어 투표하는 풍경도 어색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국운영위원회의에 참석한 운영위원들은 발언을 신청하거나 표결할 때 이름이 적힌 위원증을 높이 들어올렸다. 이를 현장 진행요원이 일일이 세고 기록해 두는 방식이었다.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이 모습을 본 네티즌들은 "당원증을 들어 표결하는 모습은 마치 북한 등 일부 사회주의 국가의 정당 회의를 보는 것 같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 관계자는 "번호표나 이름표를 들어 투표하는 것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래로 계속돼 온 관행"이라며 "표결실명제 차원에서 대의원들이 안건에 대해 어떤 의사를 표명했는지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민노당을 창당할 때 민주노총의 시스템을 다수 적용하면서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틀 동안 33시간에 걸쳐 진행된 운영위 회의 방식을 놓고서도 "과거 운동권의 이념∙사상 투쟁을 보는 듯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권파인 이정희 공동대표는 4일 오후 2시부터 5일 오전까지 밤샘 회의를 주재했다. 그러나 회의 진행자인 그는 스스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통해 회의 진행을 지연시켰고 소란을 피우는 당권파 당원에 대한 퇴장 요구에도 "당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거부했다.
이날 회의에선 당권파 핵심 인사들이 발언할 때마다 지지 당원들은 손을 높여 집단 박수로 화답하거나 비당권파 운영위원들의 발언에는 욕설을 퍼붓는 비상식적 행동을 보였다. 이에 대해 비당권파 측은 "다른 정파들은 대중정당 활동을 하면서 과거의 폐쇄적 문화를 많이 희석시켰으나 당권파의 핵심인 경기동부연합 인사들은 여전히 운동권 시절의 폐쇄적인 조직 문화와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 정서와 유리된 통합진보당의 문화는 지난해 12월 창당 논의 과정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올해 1월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국민의례를 할 것인지를 두고 통합의 양 축인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이 대립한 것이다. 결국 양 측은 태극기를 걸고 국기에 대한 경례는 하되, 애국가는 부르지 않는 것으로 절충했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집권을 추구한다는 대중정당이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 관계자는 "1970, 80년대 당시 군사정권이던 국가체제를 인정하는 국민의례에 대한 거부감이 컸기 때문에 민중의례로 대체해 왔다"며 "민주화가 진전된 만큼 시대 변화에 따라 당의 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회경 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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