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해체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온 지도 수십 년은 된 것 같다. 유엔은 1994년을 '세계 가정의 해'로 정했다. 슬로건은 '화목한 가정이 민주사회의 뿌리'였다. 노후 준비 없이 나이 들어 한숨짓는 고령자들, 부모의 맞벌이와 높은 이혼율 등에 따른 가정의 기능 부전이 이미 그때 한국 사회의 문제였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가족 문제에 대한 진단은 '핵가족'이라는 틀 안에 있었다.
최근 통계청이 2035년까지 국내 가구 변화를 예측한 보고서를 내놨다. 2010년에는 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구가 37.0%로 가장 많았다. 이어 혼자 사는 1인가구(23.9%), 부부가구(15.4%) 순이었다. 하지만 20여 년 뒤에는 1인 가구 비율이 34.3%로 가장 많아진다. 그리고 부부가구가 22.7%, 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비율이 20.3%다. 전체 가구에서 1, 2인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48.1%(835만여 가구)에서 2035년에는 68.3%(1,520만 여 가구)로 늘어난다. 10가구 중 7가구가 혼자 살거나 둘이서 생활한다는 말이다. '핵가족'보다 '가족 부재'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1인가구도 형태는 여러 가지다. 부모에게서 독립했지만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가 있을 테고, 계속 독신으로 살아왔거나 결혼생활을 정리한 중ㆍ장년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우선 관심 대상은 고령자다. 이번 통계청 조사에서 75세 이상 1인가구는 2035년에 210만여 가구로 지금보다 4배 이상 늘어난다.
일본은 이같은 가구 구성 변화를 한국보다 약 10년 정도 앞서 겪고 있는 나라다. 총무성 추계에 따르면 2005년에 1인가구가 전체 가구의 30% 정도였다. 이 추세라면 2030년에는 40% 가까이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혼자 사는 고령자라고 모두 자식도 없고, 이웃도 없는 고립무원인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자식이 있어도 떨어져 살아 1년에 한두 번 올까 말까 하면 생활에 전혀 도움이 못 된다. 응급 상황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웃 사이는 아무리 좋아도 신세지는 데 한계가 있다. 게다가 이런 고령자들끼리 모여 산다면 상황은 더 나쁘다. 일본에서는 배우자 병 간호에 지쳐서, 자식에게 신세 지기 미안해서 점점 사이를 멀리하고 스스로 목숨 끊는 사람이 늘고 있다. 혼자 죽고, 죽은 뒤에 아무도 시신을 거둬가지 않는 사람이 해마다 3만 명을 헤아린다.
정부의 사회 복지 정책만으로는 이런 현실이 감당 안 되자 일본에서 민간단체나 영리 목적의 '가족대행업'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할 때 연락하면 병원으로 데려다 주고 보호자가 되어 진료나 입원 절차를 밟아준다. 요양시설을 찾거나 이사하는 등 일상생활을 돕고 죽은 뒤 장례식까지 도맡는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비용은 단체나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회원으로 가입할 때 2,000만원 정도를 일시에 받아 그 돈으로 시간당 얼마 하는 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부 단체는 저소득자를 위해 가입비를 몇 십 만원으로 대폭 낮추고 대신 월 회비를 10만원 남짓 받아 운영하기도 한다.
한 달에 몇 만원 정도 받고 시골에서 혼자 사는 고령자를 일주일에 한두 번 찾아가는 '효도대행업'도 생겨났다. 필요한 물건을 사다 주고 수명 다한 형광등을 간다든지 집안에서 손봐야 할 것을 챙겨 준다. 30분 정도 이야기도 나눈다. 방문 결과를 이메일로 떨어져 사는 자녀들에게 보내 안부를 전한다.
노년을 가족에 의지해 살아가려는 사람은 한국에서도 갈수록 줄어 들 것이다. 늙어서 자식 덕 보겠다는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것 같다. 사회구조가 그렇게 바뀌어가기 때문이다. 이제 '가족'보다 중요한 것은 복지 정책이나 민간단체 지원 등의 공적인 사회안전망과 그 빈틈을 메워줄 다양한 형태의 '시장'이다.
김범수 문화부 차장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