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했다던 북한 3차 핵실험 설이 잦아드는 분위기다. 6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입장 발표는 이를 뒷받침하는 신호 가운데 하나다. "평화적인 우주개발과 핵동력공업을 힘있게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핵실험보다는 장거리 로켓발사와 우라늄 농축활동에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최근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에 핵실험 자제를 촉구한 것에 대해 반박하는 성격이지만 강도가 그리 높지 않다.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 강행을 규탄한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에 따라 안보리 대북제재위가 추가 제재대상 3곳을 지정한 것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다. 4ㆍ18 의장성명을 비난한 외무성성명도 2009년 광명성 2호 발사 후의 의장성명에 대한 비난보다 수위가 낮았지만 6일 입장발표는 더 완화된 수준이다.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2006년, 2009년처럼 장거리 로켓발사→의장성명→핵실험의 수순으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북한이 가까운 시일 내 핵실험을 강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또 하나의 조짐은 김정은의 중국 방문 추진설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6일 지난달 말 중국을 방문한 김영일 노동당 국제비서가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만나 김정은의 방중 의사를 전했고, 후 주석은 환영의 뜻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당분간 북한 핵실험은 없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김정은의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핵실험을 강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달 권력승계 절차를 모두 마친 김정은에게 최고지도자로서 거쳐야 할 필수사항이 중국 방문과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외교무대에 공식 데뷔하는 것이다. 이 통과의례를 거쳐야 내정과 외교에서 완벽하게 김일성, 김정일을 잇는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도 김정은의 방중은 향후 북중관계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여건과 시기다. 장거리 로켓 발사 강행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규탄 목소리가 비등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북한체제의 안정을 중시하는 중국이라도 3대 세습 후계자를 공식 초청하는 이벤트를 벌이기는 쉽지 않다. 국제사회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탓이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 임박 징후가 뚜렷해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김정은의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이 북한의 3차 핵실험을 막는 효과가 있다면 도리어 환영 받을 일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를 보는 국제사회의 눈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쯤에서 핵실험 임박 소동이 처음부터 북한 새 지도부의 계산된 전술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과 러시아도 동의해 채택된 이번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에는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상응하는 조치를 자동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중국은 공개적으로 북한 핵실험 반대를 천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에너지와 식량 지원 중단 의지까지 내비치고 있다. 물밑으로도 경고가 전달됐을 것이다. 러시아의 기류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핵실험을 강행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북한의 새 지도부도 잘 알 것이다. 굳이 핵실험이 아니더라도 우라늄 농축 활동 강화 등으로 미국을 압박할 수단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함북 길주 풍계리 핵시험장을 분주히 오가며 핵실험이 임박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여기에는 숨은 의도와 계산이 있다고 봐야 한다. 핵실험 대신 멀지 않은 시일 내에 국제사회의 주목 속에 김정은의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을 향해서는 혁명 무력의 특별행동이 곧 개시된다는 식의 고강도 위협으로 일관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보다 큰 판의 국면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의 새 지도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노회할 수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북한을 "말 안 듣는 나쁜 어린이"정도로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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