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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빈곤의 다문화화와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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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빈곤의 다문화화와 위선

입력
2012.05.0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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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스민씨의 새누리당 국회의원 당선과 수원 살인사건은 한국식 다문화주의의 허구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두 사건을 계기로 수없이 많은 네티즌들이 살벌한'제노포비아'(인종차별의식)를 표출했다. 그러자 점잖고 인권의식이 '올바른' 지식인들은 물론, 진보ㆍ보수를 초월한 모든 언론이 나서서 국수주의와 인종주의에 찌든 '찌질이'들을 비판하고 걱정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오늘날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가 이렇게 '화합'하며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안이 있던가.

필자는 '원론적으로' 다 옳고 마치 입을 맞춘 듯 점잖은 꾸지람들에 오히려 한국 다문화주의의 모순과 위선이 담겨있다고 느꼈다. 게다가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 각하께서 친히 다문화정책을 열심히 펴겠노라 공언하시니 더 깊이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무식하고 인권의식이 낮은 초딩' 취급 당한 네티즌들뿐 아니라, 기실 대한민국 전체가 다문화의 실제에 관한 한 초보급이라 본다. 왜냐하면 우리 '단군의 자손들'은 이민을 받아본 적도 없고,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자가 많아졌다지만 아직 인구 비율이나 '영향력'에서나 새발의 피도 안 된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개념'도 '법'도 없다. 교육ㆍ노동ㆍ결혼 등 이주자의 권리와 의무 등의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준비가 거의 돼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국적법과 노동관련 법처럼 배타적인 법이 다른 나라에 또 있을까.

다문화사회는 정말 좋은 것인가. 왜 좋은 것인가, 또는 불가피한 것인가. 다문화사회란 것이 진짜 한국에 가능한가. 이런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이나 토론은 거의 없었다. 어떤 다문화 사회를 지향하고자 하는 것인가에 대한 상도 물론 없다. 미국식? 혹은 프랑스식이나 호주식?

그런 와중에 '위로부터의' 혹은 '관변의' 한국식 다문화주의가 얼렁뚱땅 창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원론적이고 관념적인 인권 담론과 엄청난 위선을 더해 구성된다. 기실 이자스민을 공천한 그 세력이야말로 현재 수준의 한국식 다문화의 가장 큰 혜택을 누린다. 그러면서 동시에 참혹한 인종주의를 실천한다. 그것은 지독하게 싼 임금과 연수생 제도 등의 차별을 통해 지탱된다. 그 효과는 아래로부터 노동을 '다문화화'하는 것이다. 물론 노동의 다문화화는 기업이윤을 높이고 노동자의 단결을 저해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면서 부자 당의 대표와 대통령이 마치 똘레랑스의 화신인 양 다문화주의를 '계몽질'한다. 그들은 이주노동자의 노예노동 같은 문제에 대해 입 한번 대지 않고 이자스민씨 하나로 코스모폴리탄적 양심과 인권을 돌보는 세력인양 전세계에 광고했다. 이 얼마나 이문이 크게 남는 장사인가.

이것이 오늘날 한국식 다문화주의의 제1형식이 아닌가 싶다. 한국식 다문화주의는 내국인과 이주민 모두에 대한 새로운 노동착취구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다문화주의는 '노동의 다문화화'혹은 '빈곤의 다문화화'에 다름 아니다.

한편 주로는 가난한 나라 출신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직접 부대껴야 하는 평범한 국민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다문화상황을 맞고 다문화주의를 실천한다. 농촌의 남성과 노인들이 동남아와 가난한 이주여성들을 가족으로 맞고 있으며 중소기업의 현장에서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역시 다양한 인종의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 살아간다.

반면 '위'로 갈수록 인종ㆍ학력ㆍ언어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들이 설치돼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나 한국의 지식인들 중에 과연 동남아 출신의 사위나 흑인 며느리를 맞을 수 있는 '똘레랑스'를 가진 분들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한국의 상층 문화는 이전보다 더 백인화 내지는 미국화되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FTA와 미국 유학과 미국산 쇠고기를 편애하시는지를 보라.

다문화라는 말 자체에는 아무 내용이 없다. 다문화의 경험과 인식 또한 철저히 계급적인 것이고, 문화적 위계가 깊게 아로새겨진 어렵고 힘겨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국민이 부자 정권의 다문화 '드립'에 대해 화를 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노동과 빈곤의 다문화화'를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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