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비리ㆍ뇌물 사건 때마다 수사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던 '운전기사의 입'이 이번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에서도 어김없이 큰 역할을 했다. 운전기사는 고용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상세하게 알고 있고, 뇌물 제공 현장 등에 동행해 범행 장면을 목격하는 경우가 많아 "검찰의 운전기사 조사는 필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도 최시중(75ㆍ구속)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에게 돈을 건네는 중간다리 역할을 했던 브로커 이동율(60ㆍ구속)씨의 운전기사 최모(44ㆍ구속)씨가 수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브로커 이씨를 수행한 최씨가 파이시티 이정배(55) 전 대표의 돈을 최 전 위원장에게 전달하는 자리에서 찍은 돈 다발 사진으로 최 전 위원장의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다. 당시 최씨는 이씨의 차 트렁크에 돈 상자를 옮겨 실은 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검찰 조사에서 이 사진으로 최 전 위원장과 이 전 대표를 협박하는 편지를 보내 9,000여만원을 받아냈다고 진술하는 등, 최씨를 통해 드러난 명확한 증거와 진술 앞에서 최 전 위원장은 순순히 금품 수수 사실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최씨의 역할을 이뿐이 아니었다. 그는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에게도 2009년 파이시티 측이 건넨 3,000만원을 전달한 사실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는 진술을 검찰에 추가로 한 것으로 밝혀졌다. 강 전 실장은 금품 수수 사실을 극력 부인하다 최씨의 이 같은 진술을 근거로 한 검찰의 추궁에 결국 자백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검찰은 지난 2일 강 전 실장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해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 수사 당시 검찰이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구속하는 데도 운전기사의 진술은 결정적이었다. 로비스트 박태규씨의 운전기사였던 김모씨가 검찰에서 "박씨와 함께 골프채를 김 전 수석과 그의 부인에게 전달했다"고 말한 것이다.
청부폭행으로 지난해 물의를 빚었던 피죤 이윤재 회장 사건 역시 운전기사 송모씨가 경찰에 자수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당시 송씨는 이 회장으로부터 3억원을 건네받아 이은욱 전 피죤 사장을 폭행할 것을 조직폭력배에게 지시한 김모 이사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규선 게이트' 역시 최씨의 운전기사 천호영씨가 "최씨가 홍걸씨를 등에 업고 이권에 개입한다"고 폭로하면서 시작이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홍걸씨는 결국 구속됐다.
특수부 출신의 한 검찰 관계자는 "유력 인사 등의 운전기사는 엄격한 절차에 따라 채용되고 채용 후에도 철저한 교육을 받기 때문에 대부분 비밀이 유지되지만, 이들이 한 번 입을 열면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 때문에 주요 피의자를 조사할 때 반드시 운전기사를 조사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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