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의 참변으로 기록될 부산 노래주점 화재참사는 인화ㆍ유독성이 강한 인테리어 자재와 미로 같은 내부구조, 업소 측의 미숙한 화재대응 등 대형 화재사고로 이어질 모든 위험요인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노래방ㆍ노래주점 화재마다 대형인명피해를 내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어 특단의 화재예방 및 안전ㆍ대피 대책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화재 원인 못 찾아
5일 이날 오후 8시52분쯤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6층짜리 건물의 3층 S노래주점에서 불이 나 손님 김지원(24)씨 등 9명(남자 7명, 여자 2명)이 숨지고 25명이 부상했다. 불은 1시간 여 만에 꺼졌지만 사망자들은 모두 유독성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화재 당시 노래주점에는 손님 30여명과 업소주인 종업원 5명 40여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발화 지점은 카운터에 가까운 룸(상황도 24번 또는 21번 방)으로 화재 당시 손님이 있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6일 소방본부와 국과수, 전기공사 등과 현장감식을 나선 경찰 관계자는 "폭발로 추정되는 진술이나 증거는 없는 상태"라며 "합동감식반의 현장 감식 결과를 통해 정확한 화인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일단 누전에 무게를 두고 있으나 방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왜 대형 참사로 이어졌나
600여㎡ 규모의 이 노래주점은 각각 독립된 노래방 26개와 주방 및 보조주방, 남ㆍ녀 화장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출입구와 3개의 비상구 등 모두 4곳의 탈출구가 있으나 화재는 공교롭게도 카운터가 있는 노래방 출입구 쪽 룸에서 시작됐다. 연기가 나는 것을 발견한 업주와 종업원 2명이 진화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고 그 사이 유독성 연기는 삽시간에 내부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다. 별도로 종업원 3명이 더 있었지만 룸 안에 있는 손님들에게 화재 발생을 알리고 대피를 요청하는 업소 측의 상황 전파가 지연돼 인명피해가 더 커졌다.
음주상태의 손님들은 탈출구를 찾았지만 자욱한 연기 탓에 우왕좌왕하다 질식해 쓰러지기 일쑤였다. 소방당국은 "화재가 카운터 쪽 룸에서 나 출입구가 차단되는 바람에 손님들이 더 당황했고 비상구로 유도하는 업소 측의 대피조치가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부속실과 화장실에 인접한 비상구 3곳은 처음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찾아가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통로구조여서 '미로에 갇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더욱이 노래주점의 건물 외벽이 통유리로 돼 있어 손님들이 유리창을 깨고 탈출하기도 불가능했다. 벽과 천장이 허물어진 틈새에는 방음재로 사용된 스티로폼이 드러나 있어 유독성 가스를 증폭시킨 요인으로 추정됐다.
경찰 관계자는 "노래주점이 도면상으로는 24개의 룸으로 구성돼 있지만 26개의 룸이 있었다는 종업원의 진술이 있어 불법개조가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숨진 기수정밀 근로자 6명이 있던 룸(상황도 25번 방)이 부속실의 비상구와 가까운 위치인데도 이들이 탈출구를 찾지 못한 것으로 보여 부속실의 불법개조 여부를 조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노래주점 규모가 설치 의무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주점 건물에선 지난해 11월에도 화재가 발생, 손님들이 대피소동을 벌였던 적이 있지만 여전히 화재대응에 취약했던 것이다.
노래주점 사고, 왜 재발하나
부산에선 3년 전인 2009년 1월 영도구 지하 노래주점에서 화재가 발생, 9명이 숨지는 대형사고가 있었지만 여전히 허술한 화재 예방 및 안전조치로 볼 때 전혀 교훈이 되지 않았다. 각종 소방시설들이 무용지물이었다는 사실도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화재가 발생하면 노래방 기계의 전원을 차단해 화재 사실을 알려주는 영상음향 차단기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박재성 한국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손님들이 건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 피난 출구를 정확히 알지 못했으며, 상당수는 음주로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했고, 미로와 같은 내부 구조가 화를 키운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화재 위험이 큰 다중시설은 규모와 상관없이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거나 화재 감지기 설치를 통해 화재 발생 시 (자동으로) 영상ㆍ음향 장치를 멈춘 게 한 뒤 자막을 통해 화재를 즉각 알려 대피시키는 시스템 관리를 엄격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망자 명단
▦함진녕(31) ▦제민정(22ㆍ여) ▦김지원(24) ▦서한결(21) ▦박성범(19) ▦김은경(25ㆍ여) ▦가얀(28ㆍ스리랑카인) ▦제모누(26ㆍ스리랑카인) ▦필랑가(25ㆍ스리랑카인)
부산=목상균기자 sgmok@hk.co.kr
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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