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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 산소호흡기를 잘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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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 산소호흡기를 잘랐소"

입력
2012.05.0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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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고통받는 모습을 더 이상 옆에서 지켜볼 수 없었어요. 하늘나라로 가서 호흡기 없이 편안히 숨쉴 수 있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80대 시골 농부가 6년째 폐암으로 고통받던 70대 부인의 산소마스크 호스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끊어 사망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5일 오후 3시40분쯤 전북 전주시 전북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심모(83ㆍ전북 임실군)씨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의식이 없던 부인 곽모(77)씨의 산소호흡기 호스를 칼로 잘라 숨지게 했다. 심씨는 간호사의 신고로 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6일 경찰 조사를 받던 심씨는 넋을 잃은 듯 눈물만 흘렸다. 그는 "아내가 식물인간이 돼 고통만 겪고 있기에 집으로 데려가려 했지만 병원에서 허락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며 울먹였다. 심씨는 평소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농사 지을 때 쓰는 비료포대 등을 자르는 접이식 칼로 산소호흡기 호스를 절단했다.

5년 전 폐암 말기 판정과 함께 수술을 받은 곽씨는 입원과 통원 치료를 거듭해 오다 지난달 27일 다시 입원했고, 지난 4일 갑자기 심장 박동이 멎어 심폐소생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올해만 6번째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고 길게는 한 달 이상씩 입원 치료를 받았다. 평소 금실 좋기로 소문났지만 남편 심씨는 물론, 가족 모두가 곽씨 병간호에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병원비는 상상을 초월했고 빚은 늘어만 갔다.

심씨는 이날 중환자실에서 부인을 말없이 지켜보다 순간적으로 칼을 꺼낸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당시 아들 등 가족도 곁에 있었으나 미처 막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직전 심씨는 병원 측과 고성이 오가는 언쟁을 벌였다. 심씨는 "아내를 퇴원시키겠다"고 주장했지만 병원 측은 반대했다. 병원 관계자는 "2001년 소생 가망 없는 환자를 퇴원시킨 서울 보라매병원 의사에게 살인방조죄 판결이 내려진 이후 아무리 중환자라도 함부로 퇴원시키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심씨는 경찰에서 "집사람이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서 인위적인 연명보다는 편안한 임종을 맞게 해 주는 것이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심씨가 고령인 데다 상주라는 점 등을 고려해 불구속 기소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다시 존엄사 이슈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큰 논란을 일으켰던,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모(당시 76세ㆍ여)씨 가족이 서울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낸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 제거 등 청구소송'에 대해 대법원은 2009년 최종 원고승소 판결했다.

심씨 사건이 알려진 후 인터넷에는 심씨를 동정하는 글과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찬반론이 쏟아졌다. 아이디 mgkd는 "아내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해 산소호흡기를 잘랐을 것"이라며 "제발 80대 노인분이 처벌을 받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디 happ는 "회생가능성이 전혀 없는 환자를 무의미하게 더 붙잡고 있는 것이 과연 환자의 존엄성을 지켜 주는 것인가"라며 "무엇이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주=최수학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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