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유모(60)씨는 2010년 10월7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 한 불법 도박장에서 A(46)씨를 폭행한 사건으로 경찰과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검찰의 공소 내용에 따르면 유씨는 자신의 내연녀가 A씨로부터 500만원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자 A씨를 마구 때렸다는 것이다. A씨는 유씨로부터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받고 바지 주머니에 있던 50만원도 빼았겼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유씨가 A씨를 마대자루로 마구 때린 뒤 바닥에 쓰러지자 주먹과 발로 또 폭행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유씨를 상해 및 공갈 혐의로 구속했고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9월 유씨를 기소하면서 징역5년을 구형했다. 유씨는 법정에서 A씨를 주먹으로 두 차례 때린 것이 전부이고 서로 합의해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유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대로 끝날 것 같았던 재판은 목격자와 사건 전모를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양심선언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여기에는 뜻밖에도 '사채왕' 최모(58ㆍ구속기소)씨가 개입돼 있었다. 불법 도박장 전주 노릇으로 거액을 벌어들인 뒤 명동 사채시장에 진출해 기업들에 급전을 조달해주는 큰손으로 통하며 '사채왕'으로 불린 최씨는, 거래소 및 코스닥 상장회사 3곳에 주금 가장납입 대금 373억원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지난달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유씨의 폭행 장면을 목격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한 P씨는 지난해 2월 법원에 비공개 재판을 신청, 최씨의 지시로 거짓 진술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최씨의 집에서 브로커 Y(64ㆍ구속)씨 등과 모여 허위진술을 사전 모의했다고 밝힌 것이다. P씨는 "최씨와 Y씨가 '우리 말대로 진술하지 않으면 도박장에 출입했던 사실을 폭로해 감옥에 넣어버리겠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이 허위진술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의 또다른 하수인도 경찰에서 "유씨가 과거에 조직폭력배를 데리고 사람들을 협박하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지만, 최씨의 협박을 못 이긴 거짓 진술이었다고 법원에서 증언했다. 특히 거짓 진술 모의 현장에 함께 있었던 최씨의 전 내연녀는 지난해 12월 재판부에 사실확인서를 제출했다. 최씨가 자신과 대립하던 유씨가 중형을 선고받게 만들 목적으로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 P씨 등에게 허위 진술을 하도록 협박했다는 것이다.
P씨 등의 이 같은 주장은 최근 대구지검 서부지청이 최씨를 허위진술 교사 혐의로 추가 기소함에 따라 사실로 밝혀졌다. 이렇게 되자 당초 유씨를 수사했던 서울남부지검은 당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허위 진술을 바탕으로 유씨를 기소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유력한 진술이 번복돼 일부 무죄가 선고될 수도 있겠지만 공소장 변경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지난 주 Y씨를 "아는 경찰을 통해 유씨를 감옥에 보내주겠다"며 최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구속했다. 검찰은 유씨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관들이 Y씨로부터 금품을 받고 청탁수사를 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 중이다. 최씨를 아는 주변 인물들은 경찰관들이 최씨를 '회장님'으로 부르며 따랐다고 전하기도 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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