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꽃이 가장 많이 피는 계절이다.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 한라산과 백두산에서 나는 만병초도 이달부터 꽃이 제철을 맞는다. 만병초는 철쭉을 닮은 꽃이 크고 화려한데다 잎은 상록이라서 외국에서는 정원수로 사랑받는 식물.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고산지대에서나 어렵사리 볼 수 있을 뿐 원예용으로 나온 품종은 실내서만 키울 수 있었다. 만병초는 3미터 이상 자라고 영하 30도도 견디는 식물이라 얼마든지 우리나라 땅에서 키울 수 있어야 맞다. 그런데도 국내서는 재배법을 몰라 화분용으로만 키우던 만병초를 땅에서 키워낸 사람이 있다. 원예가 김봉찬(47) 더가든 대표. 그는 작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내마음이 들리니'의 무대이자 가장 자연에 가까운 식물원으로 전문가들 사이에 평가받는 평강식물원을 꾸민 생태주의 조경전문가이기도 하다. 1만 그루의 만병초가 자라는 제주도의 농원으로 그를 찾았다.
_왜 만병초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만병초는 진달래나 철쭉의 사촌쯤 돼요. 그런데 꽃색깔은 훨씬 다양하고 꽃도 크고 겨울에도 잎이 안 떨어지는 상록수거든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 나무가 정원에 꼭 필요한 나무에요. 우리나라는 상록수하면 소나무 밖에 없잖아요. 1999년에 경기도 포천에 평강식물원을 만들었는데 거기가 너무 춥거든요. 겨울에 영하 30도까지 내려가요. 그래서 전부 낙엽수 밖에 없으니까 꽃이 좋은 상록수를 키워보려고 이걸 심었어요. 그런데 잘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지요."
_뭐가 문제였던가요?
"토양을 맞출 줄 몰랐던 거지요. 이게 고산지대 식물이라 저지대에 심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우리나라에도 노랑만병초나 꼬리진달래 같은 게 있지만 세계적으로 키우는 원예종 만병초들은 원래 중국 운남성과 히말라야 티베트의 고원지대가 원산지에요. 500여종 되는 자생종을 200년전부터 유럽 사람들이 가져가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2만5,000여종이 있어요. 만병초는 뿌리가 주근이 없고 머리카락처럼 가늘기 때문에 흙이 무거우면 뻗어가지 못해요. 가볍고 보습력이 있으면서 물빠짐은 아주 잘되는 흙이라야 자라요. 그게 부엽토더라고요. 처음 만병초 씨앗을 가져간 영국은 석회암 지역이라서 사실 만병초가 자라기는 아주 나쁜 토양이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완전히 토양을 바꿔주면서 이걸 자라게 했어요. 그래서 서양에는 정원을 만들 때 '1달러는 토양에, 1센트는 나무에'그런 말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조경을 할 때 보면 큰 소나무 몇 백만원 몇 천만원짜리는 갖다가 심어도 토양에는 잘 투자를 하지 않아요."
_제주도 토양과는 잘 맞던가요?
"화산재가 떨어져서 된 화산회토는 부엽토 성분과 아주 비슷해요. 여기에 부엽토와 우드칩(나무조각)을 섞어서 흙을 만들어줬어요. 여기서 자라는 것들은 모두 미국에서 2001년에 연필만한 가지 2,100개를 한 개에 1달러씩 주고 들여온 것들에서 자란 거에요. 종수로는 70종이에요. 토양을 맞춰주니까 처음부터 90% 이상이 뿌리를 내렸어요. 2미터 이상 큰 나무들은 곤지암수목원, 청양 고운식물원, 국립수목원에 가있어요. 옮겨 심을 때도 흙을 먼저 바꿨어요."
_어떻게 하다가 식물을 가꾸는 일에 나섰어요?
"제가 제주도 토박이에요. 제주도에는 워낙 아름다운 야생화나 산에 나는 식물이 많잖아요. 어려서부터 식물을 좋아해서 제주대 생물학과와 대학원에서 생태학을 전공했어요. 91년에 제주 여미지식물원에 취직을 했는데 조경도 원예도 아니고 생태학을 전공했다고 맨날 리어카만 끌고 잡일만 시켜요. 여미지에 연못이 많은데 이게 금방 더러워져서 매일 청소를 해야 하거든요. 보통 산에 있는 물은 고여있어도 깨끗하잖아요. 그래서 그 이유가 뭘까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산에 가서 관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알고 보니 식물원에 외국에서 온 자료가 엄청나게 많은데 그냥 꽂혀만 있더라고요. 그래서 원예와 생태조경에 대한 외국자료도 섭렵하고 학술모임에 나가 발표도 많이 했어요. 여미지식물원에서 10년 정도 일을 했는데 제주도에 좋은 식물이 산에 많은데 하나도 안 써요. 외국의 식물들만 쓰고 열대식물들 많이 쓰고. 그래서 우리나라의 좋은 야생화나 식물들을 써보자, 그런 연구도 했고요. 그러다보니 생태조경쪽 전문가로 알려지게 되어서 평강식물원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게 되었지요."
-제주도 산에 나는 식물을 아래로 내려오게 하는 일을 많이 성공시켰나요?
"한라산백당나무라고 있어요. 백당나무는 하얀 꽃이 피고 빨간 열매가 달려서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 화목류이에요. 이건 원래 일본이 원산인데 한라산백당나무는 똑같이 하얀 꽃, 빨간 열매에 키가 굉장히 작아요. 요즘 정원식물은 뭐든 작아야 인기거든요. 그때 씨앗을 발아시켜 계속 번식시키고 있지요. 한라산털진달래라고, 이것도 키가 많이 자라야 1미터. 아주 세계적인 품종이지요. 한라산철쭉과 함께 모두 평강에서 자라고 있어요. 시로미도 80~90년도에는 시로미를 안 밟고 다닐 수가 없을 정도로 한라산에 장관을 이뤘거든요. 그런데 온난화로 조릿대가 퍼지면서 희귀식물로 전락하고 있어요. 그래서 가지 30개를 잘라서 뿌리를 내려서 평강식물원에 심은 게 지금은 방석만큼 자랐지요. 섬바위장대 한라장구채 등 굉장히 귀한 고산식물들도 다 죽어가서 평강에다 살려놓았어요. 한라산은 국립공원이니까 바꿀 수가 없거든요. 현지에다 못 살리는 대신 현지외보존을 하는 것이 지구온난화 시대에 식물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과제지요. 또 2002년부터 2년간 산림청하고 북한과 백두산 탐사하는 프로젝트를 했는데 그때 씨앗을 수집해서 키운 식물이 100여종 돼요. 백두산의 유명한 두메양귀비나 담자리꽃도 다 성공했지요. 자생종 말고 여미지에 가면 빅토리아수련이라고 잎이 1.5미터 되는 아마존에서 온 연꽃이 있어요. 그게 두 종류가 있어요. 크루지아나와 아마조니카가 있는데 여미지에는 크루지아나만 있었어요. 그래서 미국 식물원에서 아마조니카 씨앗을 얻어서 발아를 시켰고 미국 롱우드가든에서 아마조니카와 크루지아나 교배종인 빅토리아롱우드를 만든 자료를 보고 그대로 해서 교배종도 95년도에 성공시켰어요."
_그렇게 지역을 옮겨서 잘 키우는 비결이 있나요?
"저는 해보기 전에 공부를 해요. 무조건 갖고 와서 실패하면 프로가 아니잖아요.(웃음) 그리고 오리진(origin, 근원)이 뭔가를 생각해요. 만병초만 해도 뿌리가 왜 이렇게 가늘까를 생각하면 오리진이 깊은 숲속이에요. 숲이라는 게 낙엽이 쌓여서 부엽토가 되는 거잖아요. 만병초 가지를 뿌리 내릴 때는 주변 습도가 90%는 되어야 해요. 깊은 숲 습도와 상관있을 겁니다."
_뭐든 씨앗이나 가지로부터 시작해요?
"평강식물원의 고산식물이 대부분 백두산에서 채집한 씨앗으로 키운 거에요. 심지어 자작나무도백두산에서 받아온 씨앗을 심은 게 자란 거에요. 밀러 원장(천리포수목원 창립자 민병갈)도 그렇게 했어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해야 해요. 사면 오리진을 잘 모르잖아요. 현지외보존이라는 기능을 하려면 현지에서 그 유전자를, 씨앗을, 줄기를 가져와야 돼요. 그래서 키운 것만이 식물원에서 가치가 있는 종이에요. 우리는 식물원 하면 큰 나무 갖다 심지요. 그건 무식의 극치를 달리는 거예요."
-일단 식물원 개장에 맞춰 모양새를 갖추려면 큰나무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렇지 않아요. 나무를 키우는 데는 몇 십년 걸리지만 풀을 키우는 데는 1~2년이면 되거든요. 백두산 꼭대기 가면 나무가 없어요. 그래도 너무 아름답죠. 풀만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식물원을 만들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나무를 씨앗 상태로 키우면서 처음에는 풀만으로 아름다운 식물원을 꾸미면 됩니다. 큰 나무로 식물원을 꾸미면 10년이 지나도 똑같아요. 왜냐하면 사람들은요 자기보다 큰 나무를 심으면 그게 더 자라도 똑같게 느껴져요. 어린 나무를 심으면 10년 후에 가보면 경관이 엄청나게 달라져 있잖아요. 그러면 사람들이 갈 때마다 다르니까 자꾸 가고 싶어지잖아요. 우리는 타성에 젖어서 큰 나무가 있어야 멋지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식물원 자체로 가치는 점점 더 떨어지는 거예요. 세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식물도 없고요. 저것이 도대체 어떤 혈통인지도 모르니까 식물원의 역할을 못하지요. 농장을 하든 수목원을 하든 기초부터 탄탄히 해야 하는 겁니다. 평강 할 때도 제가 토양을 바꾸고 고산풍토를 만든다고 바위너덜을 만드는 데 돈을 쓰고 큰 나무는 안 사니까 사람들이 다 웃었어요. 200년 전에 영국이 그런 시행착오를 다 거치면서 '1달러는 토양에, 1센트는 나무에'를 하게 된 건데 20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수목원에서 우리는 그렇게 안 해요. 답답하지요."
-일단 만병초의 미래는 밝은 건가요?
"주위에서는 그래요.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냐고. 그래서 제가 '꽃 보면서 살란다', 그래요. 돈은 조경일로 벌어요. 옛날에는 철학이 돈이 안되어도 철학과 학생을 멋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돈 안되면 학생들이 하려고 하질 않아요. 원예가 길게 보면 돈도 돼요.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한 일본 야쿠시마 섬에서만 자라는 만병초가 있어요. 야쿠시마라고 부4쨉?이게 왜성종이기 때문에 교배종으로 인기가 높아요. 만병초가 종간 교배가 아주 잘되거든요. 우리나라 만병초하고 중국에 자라는 만병초하고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만병초는 색깔도 하얀색 빨간색 노란색 하늘색이 있어서 이 네 가지 색깔이 섞여서 나올 수 있는 색은 다 나옵니다. 자주색 계열도 향기가 있는 품종도 있습니다. 일본은 인건비가 비싸니까 한 포트에 2,000엔부터 5,000엔까지 해요. 중국은 인건비가 싼데 할 줄을 몰라요. 원산지인데도 방법을 몰라서 중국 산림청에서 2005년에 우리 농원에 왔어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기회가 있거든요.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에요? 고려시대에 이미 인삼 재배를 표준화한 나라잖아요. 인삼이 땅에 키우기 굉장히 힘들었던 종자 중의 하나거든요. 그걸 고려가 밭에 키우기 시작해서 세계적으로 인삼을 잘 키우는 나라로 유명해졌잖아요. 지금도 잘 키우고 있고. 영국이 세계적인 정원의 본고장이지만 우리도 고려시대부터 다 한 거라고요. 그걸 꽃을 좋아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면 계속적으로 발전했을텐데 뭐든지 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요.(웃음) 이제 세대가 바뀌었으니 꽃에서도 해봐야지요. 그래야 고려시대를 넘는 거잖아요."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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