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65)씨는 저축은행 3차 구조조정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4일 솔로몬저축은행 을지로지점을 찾았다. 영업시간인데도 셔터는 내려가 있었고, 새벽같이 찾아와 300번 이하 번호표를 받아 든 고객들만 쪽문을 통해 지점 안에 들어가 있었다. 하씨가 지점 입구에서 받은 번호표는 1,235번. 그는 “영업정지가 되면 5,000만원 초과 예금은 돌려받지 못한다기에 서둘러 나왔는데, 어떡하느냐”고 하소연했다.
금융당국의 퇴출 명단 공식발표 전 마지막 영업일인 이날 예금자들은 돈을 찾기 위해 해당 저축은행으로 쏟아져 나왔다. 각 저축은행은 금융결제원 전산망이 닫히는 자정 직전까지 예금 지급에 나섰다지만, 번호표만 쥐고 발걸음을 돌린 고객들이 상당했다. 더구나 월요일 출금 약속은 6일 영업정지 결정으로 공(空)수표가 됐다.
문제는 득달같이 달려가 번호표를 받았지만 순서에 밀려 한 푼도 찾지 못한 5,000만원 초과 예금자다. 설령 번호표를 받지 못했더라도 넣어둔 돈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는 5,000만원 이하 예금자와 달리, 5,000만원 초과 예금자에겐 마지막 영업일이 예금을 전액 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만약 해당 저축은행에서 5,000만원 미만과 초과 예금자를 나눠 출금 업무를 처리했다면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창구 직원들은 우왕좌왕했고, 기준을 제시해야 할 금융당국은 상황이 종료된 뒤에야 책임회피용 대책을 내놓았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6일 “5,000만원 초과 예금자는 창구에서 빨리 찾을 수 있도록 이원화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며 “다음부터는 번호표를 구분해 나눠주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먼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당장 이번 피해자들은 현실적으로 구제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중국으로 밀항을 시도하다 체포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공금 200억원을 부당 인출한 사실도 하루 뒤에야 파악했다. 신응호 금감원 부원장보는 “미래저축은행의 우리은행 수시입출금식계좌(MMDA)에서 200억원이 빠져나간 사실을 금감원 파견 감독관이 다음날 파악하고 김 회장이 챙긴 사실을 확인했다”며 “거래마감 뒤에 벌어진 일이라 당일엔 알 수 없는 구조였다”고 해명했다.
금융당국이 감독관까지 파견해 전산망을 장악했지만, 지난해 부산저축은행 사태 때 공분을 일으켰던 대주주 등의 사전 부당인출 정황이 또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주주나 직원들이 감독관 모르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최대한 밝혀낼 계획”이라며 “파악된 것이 일부 있지만 공식 발표할 만큼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