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동부연합이 주축이 된 통합진보당 내 당권파의 적반하장 행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불법ㆍ부정선거가 자행됐는데도 오히려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국민의 눈높이를 헤아리기 보다는 여전히 과거 운동권 조직 논리에 매몰돼 있는 것이다.
진보 진영의 한 유력 인사는 4일 "경기동부연합이 결국 국민을 향해 도발을 자행했다"고 씁쓸해 했다. 이정희 공동대표와 김승교 선거관리위원장 등을 통해 당권파가 진상조사위 보고서 내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데 대한 평이다. 그는 "조직이 정한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이라도 정당화할 뿐 아니라 이를 신념화하기까지 하는 세력을 진보라는 이름으로 감싸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기동부연합이 국민적 비판 여론과 상식적 판단을 거스른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4ㆍ11 총선 전 서울 관악을 야권 단일후보 경선 여론조사 조작 사태가 단적인 예다. 이정희 공동대표 측의 여론조사 조작 시도가 명백하게 확인되면서 여론이 악화했는데도 경기동부연합은 버티기로 일관했다. 결국은 이 대표가 총선 후보직을 사퇴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진보의 아이콘'으로 통했던 이 대표는 물론 진보진영 전체가 부도덕한 집단으로 인식됐다.
이런 전례가 있는데도 경기동부연합이 이번에도 반성과 사과 대신 국민 여론과 맞서는 이유는 뭘까. 진보진영 내에선 경기동부연합의 폐쇄적인 운동권 조직 논리를 꼽는 의견이 많다. 과거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절 조직을 지키기 위해 개개인의 희생을 감수했던 조직 보호 논리가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평등파 인사는 "머리로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진보적 대중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인 행동은 20년 전에서 한발 짝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파 핵심 인사의 국회 입성에 대한 경기동부연합의 의지 때문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비례대표 2번인 이석기 당선자를 두고 하는 얘기다. 2005년 이후 민주노동당과 현재의 통합진보당에서 당 운영을 좌지우지해왔지만, 정작 경기동부연합의 실세가 국회의원 배지를 단 경우는 없었다. 비례대표 경선 결과가 정당성과 신뢰성이 훼손됐는데도 비례대표 의원 당선자 사퇴 불가를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보수세력 일부에서는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에 연루됐던 이 당선자의 국회 진입을 고집하는 당권파의 움직임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국회에 이 당선자를 들여보내는 데에는 뭔가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겠느냐고 보는 것이다. 경기동부연합이 완전히 붕괴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서 버티기를 최후의 수단으로 삼은 것이란 추론도 가능하다. 서울 관악을 여론조사 조작 파문 이후 '문제 집단'으로 비판 받아 오던 차에 부정 경선의 당사자로 다시 지목됐기 때문이다. 당권파의 한 고위당직자는 "여기서 물러서면 끝장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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