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경선은 선거 부정의 결정판이었다. 각계 인사들도 "초등학교 반장 선거만도 못하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각에선 이러한 부정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제도권에 진입할 수 없도록 정치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4일 "비례대표 선거인 명부 전체가 부실로 드러났다"며 "4~6번은 괜찮고 1~3번은 바꿔야 하는 차원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3∙15 부정선거가 있었을 때 마산 지역에서만 문제가 됐느냐. 전국 모든 투표가 무효화되고 대통령까지 하야하지 않았느냐"고 혀를 찼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마인드가 전혀 없음을 증명한 것"이라며 "수법도 민주 제도에 익숙지 않던 1950년대처럼 주먹구구식"이라고 말했다.
실제 온갖 종류의 부정 선거 방식이 동원됐다. 당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전국 218곳 투표소 가운데 128곳에서 부정이 저질러졌다. 부정 유형은 무려 18가지로 분류된다. 선관위원장 직인이나 투표관리자 서명이 없는 투표용지는 무효 처리가 돼야 하지만 12개 투표소에서 이 같은 투표용지가 유효표로 둔갑했다. 복수 후보에 기표했거나 볼펜 기표 위에 기표용구(붓뚜껍)를 다시 사용한 것도 유효표가 됐고, 하다 못해 어느 후보에게도 기표하지 않은 투표용지가 8개 투표소에서 유효로 처리했다.
선거인 명부에 '최병섭'으로 인쇄됐지만 투표인 서명란에 버젓이 '명신'이라고 서명한 사례도 나왔다. 뭉텅이 투표용지'도 나왔다. 한 장씩 받아 투표함에 넣었다면 투표용지가 붙어 있을 수 없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12개 투표소에서 2~6장씩 뭉텅이로 투표함에 들어간 투표용지가 발견됐다. 투표관리도 엉망이어서 8개 투표소에선 참관인의 입회 없이 단 한 명이 개표 작업을 하고 개표기록까지 작성했다. 투표인 숫자가 달라진 것도 황당하다. 3월18일 현장투표 마감 직후 당은 "4,853명이 투표했다"고 밝혔지만 21일 최종집계에서는 5,455명으로 늘었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4•19 이후에 돈에 의한 매수 같은 것은 있었지만 이런 대규모 조작은 경험해보지 못했다"면서 "선명성이나 대의를 목숨처럼 내세우는 이들이 도덕적일 것이란 믿음은 환상이었다"고 개탄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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