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이 총체적인 부실과 부정으로 얼룩진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진보당은 3월 14일에서 18일까지 닷새에 걸쳐 현장투표와 온라인 투표를 병행해 비례대표를 뽑았다. 그런데 현장투표의 경우 한 투표함에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같은 필체의 투표용지가 여러 장 발견되었는가 하면, 선거인 명부보다 실제 투표수가 많은 경우까지 있었다. 또 투표함이 봉인이 되어 있지 않았거나, 등록되지 않은 적지 않은 수의 현장투표가 투표마감 시간 이후 집계됐다. 온라인 투표도 투표함을 열어 본 것과 마찬가지 행위인 프로그램 수정 및 동일 IP(인터넷 주소)로 된 대리투표, 중복투표의 흔적이 드러났다.
이런 비례대표 부정선거를 놓고 진보 성향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성토의 목소리가 높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태로 드러난 진보당 내의 일부 정치적 행태가 '현대화 이전에 근대화도 안 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감을 들게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에 더해 진중권씨는 진보당의 당권파로 불리는 민주노동당 계열, 즉 NL(민족해방) 계열의 문제가 드러난 것은 그나마 진보당에 국민참여당 계열이 적극적인 견제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며, 그 전신인 구 민노당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무수히 있었다고 폭로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진보당의 당권파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경기동부연합'이며, 이 단체의 뿌리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라고 봐야 한다. 처음 이러한 의혹이 제기되었던 것은 부정선거에 대한 도의적 책임으로 이정희 진보당 대표가 4ㆍ11 총선출마를 포기하면서였다. 특히 과거 이들과 함께 학생운동을 하다가 두 차례나 수감된 경험을 지니고 있는 새누리당의 한 후보가 진보당내 최소한 5명 이상의 지도급 인사들이 북한 지하조직원 경력을 지녔다고 밝히면서 '경기동부연합'의 실체에 대한 공방이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 이정희 대표는 "철지난 색깔론 공세"라면서 '경기동부연합'의 실체를 강력 부정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진보당 경기동부연합의 주도적 역할은 기정사실화 되고 말았다.
문제는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조직이 당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적인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거짓과 궤변을 일삼는 등 도덕성 상실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번 4·11총선과 관련해 벌써 여러 차례 거론되고 있는 진보당의 부정선거 문제는 비민주적이고 후진적인 정치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그동안 개인적 삶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순수진보계열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신뢰에 대한 배반이다.
특히 대한민국 진보세력의 선두주자를 자처하면서 그동안 입만 열면 인권과 도덕성을 강조해 왔던 진보당이었기에 이번에 드러난 부정선거를 접한 국민들의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당내 경선 부정선거는 범죄행위로서 진보당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으로 존재할 자격을 이미 상실했다고 본다. 따라서 진보당의 비례대표 자격으로 19대 국회에 입성하게 된 당권파 모두는 사퇴해야 마땅하다. 또한 진보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기존의 지하조직 수준의 활동전략을 탈피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선한 목적일지라도 그 과정이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기본법과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결코 정당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국회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을 '의거'라고 칭송하는 가하면, 국익은 안중에도 없는 무질서하고 폭력적인 '총파업'과 '군중시위'를 주도해 오면서 자신들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인정하지 않았던 진보당이었다.
이제 부정선거의 정황이 백일하에 드러난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과거와 같은 자가당착적 자기합리화를 이어간다면 국민들은 진보당 존재의 이유에 대해 회의하게 될 것이다.
유영옥 경기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