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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iew/ 고급시계 '스위스 메이드'… 부품에 담긴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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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iew/ 고급시계 '스위스 메이드'… 부품에 담긴 불편한 진실

입력
2012.05.0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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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생산된 부품으로 스위스에서 만든 시계는 스위스산일까, 중국산일까.

시계의 본고장 스위스에서 '스위스 메이드(Swiss-made)' 논란이 일고 있다.

전세계에서 스위스 시계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유럽 경제위기에도 스위스는 시계 하나로만 지난해 212억달러(23조9,100억원)를 벌어들였다. 국가 수출품목 3위의 효자 품목이다.

시계 수출 호조는 중국시장 성장 덕분이다. 스위스시계산업협회(FSWI)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과 중국이 129억달러(약14조5,500억원)의 스위스 시계를 수입해 세계 최대 수입국이 됐다. 중국시장은 최근 3년간 37% 성장했다.

스위스 시계가 이렇게 엄청난 인기를 누리자 문제가 생겼다. 현행법으로는 부품 중 일부를 다른 나라의 것을 사용해도 '스위스 메이드'라벨을 붙일 수 있다. 홍콩, 동남아 등지에서 가져온 부품을 사용해 시계를 만들어도 '스위스 메이드'가 된다. 라벨을 붙이면 시계 가격은 더 오른다. 1971년 제정된 스위스 상표법에 따르면 시계 부품 중 50% 이상만 스위스에서 만든 것이라면 '스위스 메이드'라벨을 붙일 수 있다. 가령 홍콩과 중국의 시계제조업체들도 스위스산 부품을 사용하면 '스위스 메이드'라는 스위스 시계의 명성을 빌릴 수 있다.

장 다니엘 파슈 스위스시계산업협회 회장은 "아시아에서 저가에 만들어진 시계가 '스위스 메이드'로 둔갑해 고가에 팔리고 있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스위스 시계산업을 위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위스 정부는 지난해부터 자국의 브랜드 제고를 위해 '스위스 메이드' 제도 법안을 마련해 기준을 강화했다. 기존 시계 부품의 50%가 아닌 80%까지 사용해야 '스위스 메이드'라는 브랜드를 쓸 수 있도록 했다. 3월 스위스 하원에서 법안이 통과됐고, 올해 말 상원에서 법안 투표가 진행된다.

법안이 통과되면 10여개의 브랜드를 소유한 대형 시계업체인 스와치 등 일부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더 커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들 대기업은 이미 스위스 내 시계 장인을 양성하고, 70%이상 스위스산 부품을 사용해 고가의 명품시계를 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위스 중소업체의 사정은 다르다. 시계 부품업체인 테크노타임의 로랑 알래모 사장은 "스위스 메이드 법안은 중국 시계와의 경쟁에서 오히려 자국의 제품이 더 불리해지는 법안"이라고 했다. 중소업체 대부분은 홍콩과 중국 등에서 일부 부품을 수입하거나, 인건비가 비교적 저렴한 아시아에 공장을 운영한다. 중소업체의 한 관계자는 "법안이 통과되면 통화가치가 높고, 인건비가 비싼 스위스에서 부품을 생산할 수 없는 중소업체는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고 우려했다.

스위스 시계 수출량 증가가 중소업체의 판매량 급증에 힘입었다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 명품만을 좇던 중국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품질 좋은 스위스 시계를 선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0년 시계 9,000개를 생산하던 스위스 시계업체 에밀 쿠리에는 내년 7만개로 생산량을 대폭 늘렸다. 이중 90%는 중국에 팔린다. 업체 관계자는 "시계의 모든 부품이 스위스산이어야 한다면, 시계산업뿐 아니라 스위스 산업 대부분이 망했을 것"이라며 "스위스 브랜드 자부심은 좋지만, 무역장벽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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