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미국 워싱턴D.C.에서 우리 기자 몇 명이 북한의 한 외교관과 한담을 나눴던 적이 있었다. 해외에 파견된 북한 관리들이 으레 그렇듯 그 역시 입담과 입심이 대단했다. "어이, 너네들 얼마 전에 네모난 뱀을 잡았다며? 신문에도 났던데."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를 향해 말을 이어갔다. "너네 기자들 과장 좀 심하잖아. 길이 20㎙, 몸통두께 20㎝가 되는 뱀이 잡혔다고 신문에 냈었지? 20㎙짜리 뱀이 세상에 어디 있냐고 항의가 빗발치자 다음 날 10㎙라고 수정했지? 또 항의를 받고는 5㎙로 줄이고, 다시 2㎙로 했다가 결국엔 20㎝까지 내려 갔지? 그러니 네모난 뱀이 아니고 뭐야?"
길이와 몸통이 동시에 20㎝가 되었으니 네모난 뱀을 넘어 정사각형 뱀이 되어버린 꼴이다. 대꾸할 말을 꺼내지 못하자 그는 즐거워 죽겠다는 듯 웃어댔다. 우리가 신문사에 있으니 신문보도 운운하며 그 얘기를 했겠지만, 정부 관리들을 만났을 땐 정부의 시책이 발표되는 양상을 그렇게 비꼬았을 것이며, 정치인들을 만났을 땐 정책결정 과정과 결과를 그렇게 비유했을 게 눈에 선했던 기억이다.
그의 농담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도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북한의 한 외교관이 우리 내부를 이렇게도 정확히 파악하여 '네모난 뱀을 만드는 사회'로 재단하는 재능도 뒤늦게 파악했다. 이후 지금까지 그의 말투와 박장대소하던 모습을 잊지 못했다. 잊기는커녕 최근엔 더욱 생생하게 기억이 되살아났다. 한 쪽의 변화와 조정에만 몰두하여 다른 한쪽과의 관계와 조화를 망각하면 비록 그 변화와 조정이 나은 방향으로 가더라도 결국엔 전체가 '네모난 뱀'의 기형이 된다는 것이다.
우선 통합진보당 내부의 경선부정 사태가 그러한 기억을 되살렸다. 우리 사회는 이미 진보세력이 국회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원하고 있음은 이번 4ㆍ11 총선이 증거하고 있다. 그러한 바람은 앞으로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스스로 정치적 효율성을 제고하여 기존 정치권 안에서 몸집을 불려야 한다는 점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효율성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못지않게 중요한 본질인 명분과 도덕성을 함께 유지하는데 소홀했기 때문에 기형적인 상황을 맞은 것이다.
새누리당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인다. 국민의 30% 이상이 '박근혜 대세론'을 믿으며 '박근혜 대통령'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한 현상의 한 편에는 당내의 민주성과 원칙준수가 같은 무게로 전제돼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망각한 듯하다. 대세론과 대선에만 마음이 쏠려 있으니 벌써부터 '사당(私黨)'이라는 기형의 집단으로 변질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민주통합당 쪽에도 기형의 기미가 보였다. 민주국가 민주정당이라면 정권획득 목표 만큼 소중한 것이 하의상달 과정인데, 국민들의 관심이 정권교체 쪽으로 쏠리는 듯하자 또 다른 본질을 망각하여 소소한 이익집단처럼 보이는 행태들이 드러나 버렸다.
최근 미국 소 광우병 사건에서도 기형적 정부행태가 드러났다. 검역 통관 수입금지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국가의 행위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들이 거듭 불거졌기 때문이다. 국민의 불안감 해소가 당연히 중요하지만 국가적으로는 국내시장과 한미통상 등 경제적 문제도 못지않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불안감 해소 요구에 전전긍긍하다 보니 경제적 문제는 망각한 채 지킬 수 없는 약속들을 쏟아낸 결과 이 지경에 이르렀다.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본질 가운데 한쪽만 바라보다가 기형적인 국면을 맞는 경우가 어디 정치 경제와 같은 거대 상황에서만 일어나겠는가. 개인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국가에서도 '네모난 뱀'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참으로 많다. 눈에 보이는, 귀에 들리는, 그래서 지금 드러나고 있는 현상의 중요성을 인정할 때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래서 자칫 뒷전으로 밀려나기 쉬운 또 다른 본질의 존재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정병진 주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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