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적인 말이지만,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그 기억과 경험들은 성인이 되어도 인격형성에 중요한 자원이 된다. 모두들 어린이가 사회의 희망이라고 하지만, 정작 어린이 교육을 위한 투자는 매우 인색하다. 방송은 말할 필요도 없다.
EBS를 제외하면 현재 지상파 채널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비율은 3.2%다. 20여 년 전 어린이 프로그램 편성비율은 10%가까이 되었고, 십여 년 전 6% 내외였다. 지금 추세대로 가면 앞으로 몇 년 후 1~2% 내외로 축소될 것이다. 아마도 지상파 방송사 경영진은 어린이 프로그램을 마지못해 제작하거나 아예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어쩌면 어린이 방송 채널들도 있기 때문에 굳이 지상파에서도 어린이 프로그램을 제작할 이유가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어린이 프로그램은 품이 많이 들어가는 프로그램이다. 연출자들은 정말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린이의 꿈과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제작하고 있지만, 제작환경은 이들을 좌절하게 만든다.
'뽀뽀뽀'는 1981년, 'TV 유치원 하나둘셋'도 1982년에 첫 방송을 시작했으니까 유아교육 프로그램의 역사는 30년을 넘었다. '뽀뽀뽀'가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때, 주제가는 성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뽀뽀뽀'와 'TV 유치원 하나둘셋'을 보고 자란 세대들은 지금 30대 초ㆍ중반 성인이 되었다. 아마도 이들은 아빠가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뽀뽀를 했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안아줘도 뽀뽀뽀는 일상이었다. '뽀뽀뽀'가 의미있었던 것은 유아교육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자체를 넘어서 가족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뽀뽀뽀'나 'TV유치원 하나둘셋'은 단순히 유아 교육프로그램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프로그램이었던 셈이다.
'뽀뽀뽀 아이조아'는 30주년을 맞이했던 지난 해 특별공개방송을 했고, 올해 'TV 유치원 파니파니'도 30주년 기념으로 소외계층 가정의 학부모와 어린이를 초청해 '파니동산 선물잔치'를 녹화하고 어린이날 특집 공개방송했다. 의례적인 행사일 뿐이다. 유아교육 프로그램들이나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은 1%를 넘지 못한다. 유아나 어린이들도 재미있는지 잘 만들었는지 알기 때문이다. 어린이 프로그램 제작진이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제작환경이 변하지 않고 어떤 정책적 배려나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방송편성의 자율 전통이 오래된 미국에서도 어린이, 청소년 프로그램은 시장에만 맡겨 놓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 하에 96년부터 '어린이 텔레비전 법'을 제정해 모든 상업 텔레비전으로 하여금 교육적이거나 정보적인 정규 프로그램을 일주일에 3시간 이상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상업방송 전통이 지배하는 미국에서도 의무편성규제가 실시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유아교육 프로그램인 '세사미 스트리트'의 제작자인 CTW는 교육부, 포드재단, 미국 공영방송인 CPB와 협력해서 수백만 달러의 연구 및 제작지원비를 받고 있다. BBC는 어린이 프로그램 제작에 전체 예산의 15% 내외를 투자한다.
우리는 한 회 2억 원이 넘는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제작하지만,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평일 매주 방영하는 유아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한 매직 스튜디오 하나 제대로 갖춘 곳이 없다. 20억 원 정도 투자하면 뮤지컬 무대와 같이 회전하는, 어린이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높이는 매직 스튜디오를 설립할 수 있다. 지상파 방송 경영진은 이런 미래를 위한 투자에는 무관심하다. 유아 교육 프로그램의 제작비는 대부분 출연료와 작가료로 지불된다. 유아와 어린이의 행동, 언어, 학습과정, 발달과정에 맞춘 전문가의 연구와 심층적인 자문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파격적인 투자는 생각할 수도 없다. 어린이날을 맞이해서 우리 방송을 보면, 아이들에게 창피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주창윤 서울여대 방송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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