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민주주의/토머스 실러 지음ㆍ하임수 옮김/에코리브르 발행ㆍ328쪽ㆍ2만원
'광기 어린 개인은 드물지만, 집단에서는 광기가 곧 법이다.'
독일의 유명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군중을 두고 이런 말을 남겼다. 니체의 말이 적용되는 실례들을 역사 속에서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이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한 사례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토머스 실러 미국 코넬대 생물학과 교수는 적절한 보완책으로 집단지성의 잘못된 판단을 수정해나갈 수 있다며 한 곤충에 주목한다. 바로 꿀벌이다.
실러 교수가 쓴 <꿀벌의 민주주의> 는 꿀벌의 의사결정과정을 담은 일종의 보고서다. 먹이가 있는 곳을 알리고, 새 보금자리를 선택하는 모든 과정에서 각 꿀벌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관찰과 실험을 통해 풀어냈다. 꿀벌의>
꿀벌 사회의 중심은 단연 여왕벌이다. 여왕벌은 일생(2,3년)동안 50만개의 알을 낳으며 집단의 생존을 책임진다. 그러나 여왕벌에게 모든 결정권이 있진 않다. 일벌 하나하나가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갖고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저자는 꿀벌의 이러한 의사결정방식이 직접 민주주의와 닮았다고 설명한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개개인은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개인이 선출한 대표가 의사를 결정하는 간접 민주주의의 반대 개념이다.
새 보금자리로 옮겨야 할 때 정찰벌은 자신이 찾은 후보지 근처에서 숫자 '8'을 옆으로 눕힌 모습으로 난다. 서로가 자신이 찾은 후보지가 좋다고 알리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벌이 여러 후보지를 보고 맘에 든 후보지 근처에서 같은 춤을 춘다. 이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다른 벌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정찰벌은 자신이 발견한 후보지와 다른 곳을 비교해 자기주장을 철회하고, 결국 모든 벌은 만장일치로 한 개의 보금자리를 선호하게 된다.
저자는 꿀벌이 '반대 없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건 꿀벌 무리의 의사가 한데 모이지 않고 분열되면 집단의 생존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령 보금자리 후보지를 놓고 설왕설래하던 중 행여 여왕벌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해당 무리는 소멸하게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다수의 벌이 지지한 후보지가 대부분 최적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는 실험에서도 잘 드러난다. 독일 연구진은 벌집에서 똑같이 250m 떨어진 5개 지점에 꿀벌 무리가 살기엔 비좁은 부피 15리터의 벌통 4개과 넉넉한 40리터짜리 벌통 1개를 설치했다. 서로 다른 무리로 보금자리 찾기 실험을 다섯 차례 한 결과 네 무리가 40리터 벌통을 택했다. 정찰벌이 이 벌통을 뒤늦게 발견한 경우도 많았는데, 그때마다 꿀벌 무리는 스스럼없이 이전 결정을 바꿨다.
저자는 책 말미에 인간의 집단지성이 배워야 할 점이라며 '꿀벌의 지혜' 다섯 가지를 적었다. '공동 이익과 상호 존중에 기초한 개인으로 결정 집단을 구성하라' '집단적 사고에서 지도자의 영향을 최소화 하라'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라' '논쟁으로 집단 지식을 종합하라' '의사결정 속도, 정확도 등을 생각해 정족수를 활용하라' 등이다. 특히 지도자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운다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원자력 발전, 자유무역협정(FTA) 등 주요 이슈에 대해 지도자가 먼저 의견을 피력하고, 방향을 정하는 한국 사회에서도 꿀벌의 지혜는 유효해 보인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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