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대선 후보 경선 레이스가 초입부터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역대 모든 정당들이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를 선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진영의 일부 인사들은 '경선 무용론'을 제기하는 등 오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비박(非朴)진영의 대선주자들은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박 위원장 흠집내기에 주력하고 있다.
친박계 일부의 오만한 경선 무용론
새누리당 이상돈 비상대책위원은 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지율 1~2%, 심지어는 그것도 안 되는 분들이 저마다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경선에 나가겠다고 하면 잘못하면 경선 자체를 희화화시키지 않겠는가"라고 말해 벌집을 쑤셔 놓았다.
이 위원의 발언은 그가 지난달 했던 '경선 무용론' 내지 '박근혜 추대론'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친박계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3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지지율 1%대(비박 진영 대선주자)와 지지율 40%대(박 위원장)를 놓고 완전국민경선제로 하자고 하는 것은, 한두 달 뒤에 치러질 경선에서 요행을 바라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들의 시각은 "약체 후보들과 경선을 해봐야 시간 낭비일 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친박계 일부의 생각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경선 무용론이야 말로 박 위원장의 이미지만 훼손시킬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주장이라는 게 대다수 당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특히 당내 민주화가 실종됐다는 논란 와중에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1등 주자 측의 오만'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어떤 식으로든 경선을 치르는 것이 박 위원장의 본선 경쟁력에도 도움이 된다"며 "충성 발언이 결국 박 위원장에게 손해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 흠집내기에 주력하는 비박 주자들
비박 진영 대선주자들은 요즘 '내가 왜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얘기하지 않고 '저 사람은 안 된다'는 주장만 앞세우고 있다.
정몽준 전 대표는 대선 출마를 선언할 때 일부 정책을 제시한 것을 제외하고는 주로 박 위원장 공격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1인 지배체제로 당의 생명력과 자생력이 없어졌다. 당내 민주주의가 실종됐다"고 말하는 등 연일 날 선 비판을 하고 있다. 최근엔 측근도 가세했다. 안효대 의원은 3일 "(박 위원장과 친박계가) 총선 승리라는 미명 하에 친박 일색으로의 사당화를 합리화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또 "박 위원장은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선거 지원을 거절하며 책임을 회피했다"고 비난했다.
김문수 경기지사도 최근 "새누리당은 신비주의적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다"며 "박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한 불통"이라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재오 의원도 최근 대선 경선 룰 변경과 관련, "현재의 룰이 자기(박 위원장)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놓고 룰에 맞추라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박 위원장을 공격했다. 인천대 이준한 교수는"비박 진영 주자들이 박 위원장 흠집내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은 물론 자신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의 무시 전략도 문제
박 위원장은 자신을 공격하는 비박 진영 주자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는 비박 주자들의 비판에 맞대응한 적이 거의 없다. 최근 몇 차례 "정쟁만 하다가는 당이 자멸한다" 등의 말로 에둘러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게 전부다.
대신 친박계 인사들이 '대리 반격'에 나섰다. 이정현 의원은 2일 정 전 대표를 향해 "2002년 노무현 정권 탄생에 기여한 분"이라고 공격했고, 윤상현 의원은 "왜곡된 사실로 박 위원장을 공격하면 적전분열만 가져온다"고 엄호했다. 이에 정 전 대표는 3일 "박 위원장이나 하수인이나 대리인을 내세우는 것은 비겁하다"고 반격을 가했다.
박 위원장은 비박 주자들의 판 흔들기 의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생각이겠지만 당내 대선후보 경선의 승부가 사실상 끝났다고 생각하고 '부자 몸조심'을 하는 측면도 큰 것 같다. 그러나 당 안팎에서는 "야권은 예선에서 '어게인 2002년' 드라마를 쓰려고 갖은 전략을 동원할 텐데, 박 위원장 진영이 대세론에 취해 있어 걱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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