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조(59) 제이엔테크 회장이 박영준(52)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함께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에도 적극 개입한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이 회장이 단지 박 전 차관의 자금세탁 역할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박 전 차관의 비자금을 총괄 관리한 인물일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파악된다.
이 회장은 당초 이정배(55) 전 파이시티 대표가 박 전 차관에게 인허가 청탁 명목으로 건넨 불법자금을 브로커 이동율(60ㆍ구속)씨를 통해 받아 세탁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박 전 차관의 자택 등에 대해 압수수색이 실시된 지난달 25일 중국으로 사실상 도피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현 정권 들어 '포항의 실세'로 부상한 인물이라는 소문만 무성했던 이 회장의 실체가 처음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박 전 차관이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에 불법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2008년 11월5일이다. 지금까지는 그 날 박 전 차관과 포스코 차기 회장으로 유력시되던 윤석만 당시 포스코 사장(현 포스코건설 고문), 김모 당시 포스코 서울사무소장 3명이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회장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포스코의 일개 협력업체 운영자에 불과한 이 회장이 포스코 고위 경영진이 모인 자리에 동석한 것은 그가 포스코와 권력 실세를 잇는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는 세간의 의혹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박 전 차관이 포스코 회장 선임을 막후 조정하기 위해 나선 시점부터 굳이 이 회장을 동석시킨 이유는 돈 거래 실무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이날 회동에서 윤 사장은 회장 선임 대가로 반대급부를 기대한 박 전 차관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고, 결국 경쟁에서 탈락했다는 것이 포스코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에 박 전 차관은 또 다른 후보였던 정준양 당시 포스코건설 사장(현 포스코 회장)에게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정 사장이 그 해 12월30일 윤 사장에게 전화해 "나도 박 전 차관을 만났다"는 말을 하면서 알려졌다. 포스코 최고위층 관계자는 "두 달 사이 박 전 차관과 정 사장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이뤄졌고, 이후 대세는 급격하게 정 사장에게 기울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자리에도 이 회장이 동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준양 회장 부임 이후 이 회장이 운영하는 제이엔테크가 급성장하면서 이 회장이 박 전 차관과 포스코 사이에서 모종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졌다고 포스코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그 후 상황은 일사천리로 전개됐다. 통합민주당 우제창 의원이 제기한 주장에 따르면 박 전 차관은 2009년 1월8일 정 사장에게 "당신이 회장 됐으니 입 다물고 있어라"고 통보했고, 같은 달 29일 열린 포스코 신임 회장 추천 이사회에서 정 사장은 신임 회장으로 최종 선임됐다. 3차까지 간 투표에서 정 사장이 4대 2로 윤 사장을 제치고 회장으로 최종 선임됐다. 당시 마지막까지 윤 사장을 지지한 2명의 포스코 사외이사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었다.
이 회장은 이외에도 박 전 차관이 2010년 자원외교 목적으로 버마를 방문했을 때도 동행한 사실이 확인됐다. 포스코 관계자는 "이 회장은 막대한 이권이 남는 포스코 하청사업에 박 전 차장의 의중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활약한 것으로 안다"며 "대다수 업계 사람들은 포스코 근처에서 나오는 돈을 이 회장이 관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박 전 차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이 영장을 발부받고 이 회장의 신병까지 확보한다면, 파이시티 사건에서 시작된 박 전 차관 수사의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이 회장은 수사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며 "남은 수사에서는 이 회장이 키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