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3일 최종 수사 결과 발표에서 사이버 공간상 의견 충돌이 범행의 주된 원인이라는 하루 전 발표를 되풀이했다.
하지만 범행 동기를 둘러싼 의문은 여전하다. '현피'니 '사령(死靈)카페'니 하는 어른들은 모르는 10대 청소년들의 사이버 세계와 심리상태가 이 잔혹범죄의 배경에 자리잡고 있지만 무엇 하나 범행동기로서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경찰은 인터넷 사령카페와 범행의 관련성에 대해 "이들이 사령카페에 가입한 사실은 있으나 범행과는 큰 연관성이 없다"고 발표했다. 그 근거로 피해자 김모(20)씨의 여자친구였던 박모(20)씨와 이모(16)군, 홍모(15)양이 사령카페 가입 후 올린 글은 주로 잡담이나 고민 상담이었고, 이군과 홍양은 활동이 부진해 강제 탈퇴를 당한 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령카페를 빼놓고 설명하기는 어렵다"며 시각을 조금 달리한다.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이군 등의 입장에선 김씨가 자신들의 흥미거리이자 관심사인 사령카페를 부정한 것은 분노를 일으킨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웅혁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피의자들이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잠시 사령카페라는 비공식 문화를 통해 심리적 허탈을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있었다"며 "사령주의에 대한 이들의 사고 방식과 정서를 놓고 다투면서 생긴 복수심이 김씨 살해 과정에서 큰 작용을 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 공원에서 피해자를 40차례나 찌른 범행 동기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살해 현장에 있었던 이군, 홍양, 대학생 윤모(18)군은 "카카오톡 채팅에서 김씨가 독선적인 태도를 보인 점이 기분 나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알게 돼 4~5차례 만난 게 전부인 이들이 김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소한 이유로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게 선뜻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윤군은 김씨를 범행 당일 처음 봤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당황해서 그랬다고 하지만 40회나 찔렀고, 사람 목숨이 끊어졌는데도 폭력을 행사한 '과잉폭력'"이라며 "주로 개인적인 원한이나 분노가 클 때 이런 게 표출되는데, 어른들이 보기에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 간의 갈등이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되고 누적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피의자들이 어려서부터 폭력적인 컴퓨터 게임이나 인터넷 등에 오랫동안 노출됐고, 온라인 공간과 현실 세계를 특별히 구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인터넷 공간의 말다툼이 현실의 싸움으로 번지는 청소년들의 '현피'문화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피는 '현실'과 'Player Kill(상대를 죽인다는 게임 용어)'의 앞 글자를 딴 합성어로, 온라인상의 마찰이 현실의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한 고교생이 카카오톡 대화 중 욕을 했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함께 중학교 동창인 또 다른 고교생을 집단 폭행하는 등 현피로 촉발된 범죄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요즘 청소년들은 바로 옆에 있는 친구들과도 직접 대화하기보다 카톡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며 "'사이버 세계의 나'도 중요시 여기기에 온라인에서의 의견 충돌은 큰 반발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지난달 30일 이군 홍양 등과 함께 있다가 피해자 김씨를 만난 뒤 먼저 집으로 돌아간 박씨도 살인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박씨는 이군과 윤군이 평소 '(김씨를) 죽여 버리겠다' 등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과 이들이 이날 김씨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박씨는 경찰조사에서 "만나서 혼내줄 거라고 한 건 알고 있지만 일상적인 다툼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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