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3일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투표 조작에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검찰은 수사 동력 자체는 확보한 상태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이 '정치적 의도가 있다'며 검찰 수사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자칫 수사기관과 정당 간의 마찰로 확대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검찰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통상적 고발 사건 절차에 따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수사 진행 과정의 여러 변수를 고려할 때 어려움도 예상된다는 중론이다.
우선 이 사건은 당내 경선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투표로 인한 선거범죄로 볼 수 있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의혹만으로는 공직선거법으로 처벌하기 어렵다. 마땅한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법은 당내 경선 과정에 재산상 이익 또는 직위 제공, 즉 금전 또는 그에 상응하는 거래 행위가 있을 때만 처벌할 수 있게 돼 있다. 대리ㆍ중복투표 등 온ㆍ오프라인상의 투표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사건의 경우 해당 사항이 없는 셈이다. 즉 향후 수사 과정에서 비례대표와 투표자들 간에 부정투표를 놓고 금전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선거법 적용은 힘들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처벌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시민단체의 고발 내용처럼 투표 조작은 정당의 정상적 활동을 방해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로 볼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대리ㆍ중복투표 등 조작행위는 상대방에게 오인이나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뜻하는 '위계'에 해당되고, 이를 이용해 정당의 '정당한 업무'인 경선의 공정성 진행을 방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의지를 갖고 수사를 하면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통합진보당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또한 처벌에 앞서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 검찰로서는 통합진보당의 투표인명부, 온라인 투표 시스템 관련 자료 등 정당 내부 자료가 필요하다. 이런 자료는 현실적으로 당의 협조 없이는 확보가 어렵다. 통합진보당은 "내부 문제로, 자체 해결하겠다"며 검찰 수사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검찰이 강제수단을 동원한다면 통합진보당은 소수당 탄압, 검찰의 정치 개입 등 명분을 내세워 반발할 것이 뻔하다. 결국 정당과 검찰 간 마찰로 확대돼 사건의 본질이 변질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검찰로서도 난감한 상황이다.
2년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민주노동당(현 통합진보당) 당비 납부 사건 수사에서 검찰은 당원 명부를 제공받지 못하자 결국 당사를 압수수색했지만 이마저 마찰만 빚고 자료 확보에도 실패한 적이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투표 조작이라는 중대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철저한 규명과 동시에 관련자 처벌이 필요하지만, 통합진보당이 반발하는 상황에서는 매끄러운 수사가 어렵고 잡음만 생길 수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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