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부부 줄스(줄리안 무어)와 닉(아베트 베닝) 사이에서 자란 남매가 정자를 기증한 생물학적 아버지를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에브리바디 올라잇'(The Kids Are Alright·2010). 정자 기증자인 폴은 아들 레이저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수많은 질문을 뒤로한 채 이렇게 묻는다. "내 아들이 나이키를 좋아하는지 뉴발란스를 좋아하는지 늘 궁금했어."
이제 운동화는 단지 편해서 신는 신발이 아니다. 신는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을 그대로 드러내는 중요한 패션 품목이다. 꿈에 그리던 아들의 그간의 삶이 궁금한 아버지가 대뜸 선호하는 운동화 브랜드부터 묻듯. 최근 몇 년 새 활동성과 실용성을 강조한 스포티즘(sportism)이 세계적인 메가 트렌드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봄·여름 시즌의 신발 트렌드는 단연 운동화다. 거리가 온통 운동화 일색이다.
또 워킹화, 러닝화 이야기냐고? 아니다. 최근 확산 중인 운동화 패션은 3년여 전부터 급성장을 거듭해 온 기능성 신발의 돌풍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요즘 거리에서 쉽게 눈에 띄는 운동화는 '올레길, 둘레길의 필수품'으로 포장됐던 워킹화보다는 관련 업체들이 패션성을 강조해 내놓은 이른바 '라이프 스타일화'가 많다.
패션 아이템으로서 운동화의 부상은 도심 오피스족의 옷차림뿐 아니라 관련 업체들의 마케팅 변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푸마는 국내에 법인을 설립한 2008년 이후 처음으로 국내 모델을 기용한 광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소셜 캠페인'이라 이름 붙인 이 광고 활동의 아이콘은 가수 이효리다. 20~30대 여성 소비자를 염두에 두고 패션 감각이 뛰어난 스타를 기용한 것이다. 이정희 푸마코리아 라이프스타일팀장은 "푸마는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 모델만 고수하는 브랜드이지만 평상복 차림에 어울리는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면서 목표 소비층에 호소할 수 있는 국내 모델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실제 이효리가 이들 신제품 중 하나를 신고 찍은 자연스러운 사진은 트위터에서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의 신발로 알려지면서 보보스족, 즉 부르주아의 물질적 실리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누리는 새로운 상류 계급의 상징처럼 소개됐던 고급 브랜드 뉴발란스는 최근 가격대를 다소 낮춰 보급형이라 할 만한 제품을 잇따라 내놓았다. 특별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닌 평상시에 신어도 괜찮은 패션 아이템으로서 운동화의 중요성이 커진 까닭이다.
오정경 뉴발란스 마케팅팀장은 "2004년부터 주 5일 근무제의 순차 시행으로 주목 받게 된 운동화는 서로 다른 느낌으로 섞어 입는 믹스매치(mix-match) 패션이 인기를 끌면서 운동화를 다소 꺼리던 젊은 여성 소비자에게까지 큰 관심을 얻고 있다"며 "업계 경쟁이 심해지면서 운동화뿐 아니라 외국의 다양한 스니커즈 브랜드도 대거 국내에 소개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운동화의 유행은 단순히 굽이 낮은 스니커즈 시장의 확장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운동화처럼 생긴 굽 높은 신발도 여성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에도 유통되고 있는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의 운동화 힐 '베티 스니커즈'가 대표적인 예다. 국내에 이 제품을 수입, 판매하는 LG패션에 따르면 1월 말 처음 수입된 전량(100켤레 미만)이 2월 초에 매진됐다. 배우 고소영이 신혼여행 출국 길에 신어 '고소영 신발'로 불리는 아쉬(Ash)도 수많은 유사상품이 등장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운동화가 아무리 매력적인 패션 아이템이라 해도 서구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신인 동양인이 멋스럽게 소화하기란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요즘 유행인 색채감을 강조한 화려한 운동화는 자칫 발과 다리를 딱 구분시켜 키가 더 작아 보일 수 있다.
그럼 어떻게 신으면 멋쟁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우선 운동화는 레깅스와 궁합이 좋다. 원피스처럼 길게 나온 롱 티셔츠에 레깅스를 입고 운동화를 신으면 무난하지만 급격히 더워진 요즘 날씨에는 조금 다른 선택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체형에 관계 없이 치마보다는 바지를 입는 게 잘 어울린다. 밑창의 기능성을 강조한 운동화는 굽이 완전히 납작한 단화보다는 단 2, 3㎝ 정도라도 키높이 효과가 있다. 약간 길게 내려오는 청바지를 입고 신으면 어느 정도 키가 커 보이는 착시 효과를 유도할 수 있다. 치마를 입고 운동화를 신으려면 치마 길이에 신경 써야 한다. 어정쩡한 길이보다는 미니스커트가 더 적합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 있는 태도다. 패션 칼럼니스트 황의건씨는 "어설프게 체형 보완을 고려한 옷차림보다는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당당하게 드러낸 차림새가 운동화 패션에는 더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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