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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돈이 되어 버린 날씨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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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돈이 되어 버린 날씨의 세계

입력
2012.05.0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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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우연히 날씨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초대해 함께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여럿 함께 끼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날씨파생상품'이란 것을 다루기로 마음을 먹었다. 몇 해 전부터 나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려면 '금융화'란 추세를 파헤쳐보아야 한다고 마음을 먹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금융 공부를 하다 곧잘 마주치는 게 날씨파생상품이란 말이었다. 먹고 사는 모든 문제가 금융의 문제로 둔갑한 현실을 가리키기 위해 언제부터인가 많은 이들이 '금융화'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노후가 걱정된다면 월지급식 펀드에 가입하라고 유혹하거나 백세까지 살게 된 시대에 당신의 미래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고 위협하는 광고들을 이제는 심심찮게 마주친다. 이는 좁혀보면 언제부터인가 '살림살이'란 것이 '자산관리'로 둔갑해 버렸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개인이나 가족의 경제생활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이든 국가이든 이제 경제는 금융의 문법에 따라 이해되고 식별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른지 오래이다.

그렇지만 날씨마저 금융화되고 있다고 말하면 많은 이들이 의아해 할 것이다. 이를테면 서울의 날씨가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채권이 되어 매매된다면 어떨까. 물론 지금 당장 그런 일은 일어나고 있지 않지만 아마 조만간 그런 일이 생길 조짐이다.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날씨파생상품'의 판매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진금융기법'을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거나, 급변하는 금융시장이 만들어내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이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이다 등등. 핑계야 분분하다. 그리고 이미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세 도시, 도쿄, 오사카, 히로시마의 날씨가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매매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날씨가 가격을 가지고 세상에서 판매될 수 있을까.

마이클 무어가 몇 해 전 만든 다큐멘터리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를 보면 인상적인 대목이 나온다. 감독은 금융위기 이후 초토화된 미국을 유랑하며 대관절 자기네 나라가 어쩌다 그런 궂은 꼴을 겪게 되었는지 추적한다. 그가 내린 결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모든 재난의 원인이 '금융파생상품'이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월가를 찾아가 지나가는 이들을 붙잡고 '파생상품'이 뭐냐고 묻는다. 어쩌다 운 좋게 금융공학자 한 명으로부터 설명을 듣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간단하다. 그것은 아무도 설명할 수 없고 또 납득할 만큼 두둔할 수 없는 마법이자 사기라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에게 주택구입자금을 빌려준 은행의 도덕적 해이 탓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에게도 대출을 해주어도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을 만큼, 그에 따르는 위험을 '회피'하게 해줄 수 있는 파생상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날씨가 파생상품이 되는 것도 이런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날씨를 '위험'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그것을 회피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온이 몇 도씨 더 오르느냐에 따른 위험을 계산하고 그것에 따라 가격을 매기면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금융기관 종사자로 변신한 수학자들과 기상학자들이 대기한다. 나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서울의 기온 변동의 위험을 가격으로 매기고 그것을 선물이나 옵션 같은 상품을 만들어내고 이를 거래소나 아니면 장외 시장에 팔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투자자는 그 물건을 자신의 포트폴리오 속에 끼워 넣기 위해 사고 또 되팔 것이다. 그렇다면 실은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이 위험이란 견지에서 계산되고 가격을 가지게 되는 세상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만든다는 미다스의 손처럼 이제 세상의 모든 것을 돈으로 만들어내는 파생상품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무엇일까. 화폐가 모든 것을 자신의 거울에 비춰 보이는 이 세계에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의 모든 비밀은 파생상품에 숨어있겠단 생각이 드는 것은 어디 나뿐일까 싶다.

서동진 계원예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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