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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오컬트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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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오컬트 문화

입력
2012.05.0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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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공포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 청소년기에 본 의 충격이 워낙 컸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악령에 사로잡힌 열두 살 소녀의 괴기스러움은 이전에 전혀 경험치 못한 충격이었다. 흉측하게 변한 얼굴이 돌연 360도 돌아가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선연하다. 이후 , 의 엽기적 잔인성이 주는 공포감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두려움을 현실처럼 생생하게 표현한 때문일 것이다.

■ 바로 이 가 대표적인 오컬트(Occult)영화다. 일반적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 그게 오컬트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소수의 열광적 마니아집단을 연상시키는 컬트(Cult)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악령, 악마, 영혼, 주술 등이 오컬트 문화를 이루는 주요 내용이다. 이 점에서 오컬트는 사실 거의 모든 동서양 종교와 신앙의 기저를 이룬다. 특히 중세 마녀사냥은 이를 거대종교권력 유지에 이용한 최악의 사례다.

■ 일상에선 일부의 특이한 취미나 재밋거리 정도리라 여겼던 오컬트 문화가 청소년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사실이 최근 도심공원 살인사건으로 드러났다. 죽은 이의 영혼과 교류하며 악령을 물리친다는 이른바 '사령(死靈)카페'에서의 활동을 둘러싼 다툼이 발단이라니, 가상의 저승 싸움이 이승의 살인을 부른 셈이다. 이런 유의 카페가 100곳이 넘고, 귀신 부르는 분신사바놀이의 서양판인 '위자보드'같은 것도 크게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 오컬트 문화의 확산은 사회병리현상이다. 일찍이 칼 세이건이 에서 개탄했던 사이비과학의 문화다. 악령 등의 추상적 대상에 집착하는 데는 무엇보다 현실세계의 실재(實在)와 대면하기를 두려워하거나 그로부터 도피하려는 심리가 깔려있다. 그들끼리만 통하는 그 세상에선 어떤 황당한 주장도 확인 받을 필요가 없어 자유롭고, 그러니 책임질 일도 없다. 고립과 불안, 아집의 벽이 날로 두터워가는 우리사회의 모습이 딱 이렇지 않은가.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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