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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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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입력
2012.05.0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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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이었다

이곳에 단 하나의 백자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알았다

그것은 하얗고

그것은 둥글다

빛나는 것처럼

아니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있었다

나는 단 하나의 질문을 쥐고

서 있었다

백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많은 여름이 지나갔는데

나는 그것들에 대고 백자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여전했다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에서 나는 단 하나의 여름을 발견한다

사라지면서

점층적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믿을 수 없는 일은

여전히 백자로 남아 있는 그

마음

여름이 지나가면서

나는 사라졌다

빛나는 것처럼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좋은 시를 엉뚱하게 읽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가 자꾸 '단 하나의 백지가 있는 방'으로 읽혀요. 백지와 백자는 다르지, 하면서도 이곳에 단 하나의 백지가 있다는 것을… 백지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계속이요. 얼마 전 동료의 실수담을 들었어요. 수업시간마다 한 여학생의 이름을 거듭 잘못 불러 나중에 항의를 받았대요. 왜 이러지? 어려운 이름도 아닌데, 생각해 보니 차마 부르기가 막막했던 첫사랑의 이름이었다나요. '이 희고 둥글고 빛나는 사물을 왜 나는 잘못 부르는 것일까?' 혹시, 내 앞의 백지가 무언가 가득 담을 수 있는 백자와 같았으면 하는 마음? 나는 단 하나의 질문을 쥐고 서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은 여전히 백지로 남아있는 그 마음. 아무런 답도 없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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