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적어도 이십만은 죽었네, 아니 삼십만이 넘는다네, 하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천지도의 민란 지도자인 김봉집을 비롯한 이름난 행수들이 차례로 잡혀서 서울로 끌려갔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난리 때문에 여러 고장이 두절되어 우리네 보행객주는 한산했다. 엄마와 내가 논의하여 파시 철에 어염을 눅은 값으로 사서 쟁여두었다가 내륙의 산간지방 장터에 내다파는 작은 상단을 꾸려보기로 하였고, 무시로 객주를 겸하기로 하였다. 안 서방이 곁꾼으로 장돌뱅이를 두고 갱갱이 나루에서 뱃길로 부여 공주 회덕까지 지류를 따라 오르고, 거기서부터 주인을 정하여 각 장터로 나돌며 어염을 넘기고, 돌아오는 길에는 무시로 잡물들을 모아다가 강경에서 도매한다는 생각이었다. 갯가의 고을은 물론이고 도방 대처에서 아쉬운 것이 자잘한 살림도구들이라 그런 물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두고두고 팔릴 만한 상품이었다. 용수, 조리, 빨랫방망이, 다듬잇돌과 방망이, 홍두깨, 시루 밑, 바가지, 빨랫줄, 방비, 수수비, 싸리비, 삼태기, 고물개, 이남박, 나무주걱, 국수틀, 절구, 석쇠, 쓰레받기, 나막신, 맷방석, 짚 항아리 뚜껑, 똬리, 채반, 광주리, 채독 등등 산간 내륙지방의 수공품들을 대어놓고 거둘 작정이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신통이 진득하게 마음을 잡고 살림에 재미를 붙이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단오명절 가까운 초여름 어느 새벽에 윗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나는 잠이 깼다. 창문이 훤히 밝았지만 방 안은 아직 어두컴컴했는데 그이가 옷 입고 흑립 쓰고 보퉁이를 꾸리고 있었던 것이다.
뭐하는 거예요?
좀 일어나보구려.
영문을 모른 채 아직도 잠이 덜 깨어 부스스 일어나 앉으니 그가 내 앞에 단정하게 일어서더니 큰절을 올렸다. 나는 그제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그이가 어딘가 먼 길을 떠나려 한다는 눈치를 챘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로 내게 말했다.
당신의 하늘 같은 보살핌으로 내가 살아남았소.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대장부가 처음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구차하게 살아남기만 하면 뭐하겠소. 이제 길을 떠났다가 내 꼭 다시 돌아오리다. 세상에서 당신 같은 여인과 맺은 인연이 다시는 더 없을 것이니, 맹세컨대 나는 박연옥의 사내요.
내 눈에서는 저절로 눈물이 솟아나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집에서 저와 같이 살면서는 안 되나요? 그 일이 천지도 일이라면 이제 조선 팔도에서 다 망해먹은 일을 당신이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니오, 나더러도 입도하라면 같이 하십시다. 기도하고 주문 외우고 뭐든지 할 수 있다오. 당신 말하던 스승이 누구이며,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 모르오나 내가 그를 찾아갈 테요. 찾아가서 집사람을 내치고 도를 닦은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따질 테요.
그는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소매를 들어 젖은 내 얼굴을 닦아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소마는 형편이 딱하여 발명할 말이 없구려.
신통은 다시 물러나 단정하게 두 손을 모으고 서서 말하였다.
내 마음 정한 곳은 당신뿐이니, 세상 끝에 가더라도 돌아올 거요.
하고는 다시 내게 절하고 괴나리봇짐을 들었다. 내가 따라나서려니 신통이 봇짐에서 뭔가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동그란 구슬 같은 것들을 꿰인 팔찌 모양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는 변변히 살필 틈도 없이, 그의 소매를 잡았다.
떠난다면서 채비도 못 하게 한단 말이어요? 길양식도 없을 테고 노자도 없을 텐데…… 아침이라도 자시고 가면 안 돼요?
어머님이 깨면 번거로워 그러오. 내가 올 세밑에는 꼭 돌아오리다.
신통은 잡은 소매를 뿌리치고 방문을 열고 툇마루로 나섰고, 나는 급한 마음에 농을 뒤져 패물 몇 가지를 닥치는 대로 집어 주머니에 넣고는 뒤따라 나섰다. 휘적이며 앞마당으로 돌아나가는 그를 따라잡아 괴나리봇짐에 쑤셔넣어주고는 대문간으로 나서는데 그가 돌아서서 혀를 차며 걸음을 멈추었다. 내 꼴이 무슨 주인을 쫓는 삽살개 같아져서 나는 문고리를 잡고 섰고, 이신통은 다시 휘적휘적 다리를 건너갔다. 그가 아직 물안개가 퍼져 있는 장터 모퉁이를 돌면서 자취를 감출 때까지 나는 대문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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