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사전 예고 없이 아프가니스탄을 깜짝 방문했다. 2014년 미군 철군을 앞둔 시점에서 아프간 정부를 달래고 테러세력 궤멸을 공식 선언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미 언론들은 "국민의 전쟁 피로감을 없애준 대통령"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대선 홍보효과를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아프간 바그람 공군기지에 도착, 미 국민을 상대로 대국민 TV연설을 했다. 이어 수도 카불로 날아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과 전략적 동맹 협약을 체결했다. 내용만 보면 과거 두 차례(2010년 3, 12월) 방문과 유사하다. 오바마는 그 때도 미군 장병들을 위로하고 아프간 당국과 협력 사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메시지의 강도는 확연히 달랐다. 방문의 1차 목적은 아프간 재건 지원이다. 동맹협약은 미군 철수 이후에도 미국이 향후 10년 간 아프간의 경제활성화와 공공제도 발전에 자금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바마는 카르자이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프간은 미국의 친구이자 파트너"라며 "양국 관계가 이제 새 장을 열었다"고 선언했다.
오바마의 솔직한 속내는 바그람기지 연설에서 나왔다. 그는 "알카에다를 아프간에서 몰아내고 빈 라덴을 정의의 심판대에 올렸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이를 '동트기 전 어둠 속에서 서광이 비치는 시기'로 규정했다. 이전 10년이 '전쟁의 먹구름' 시대라면 이제 테러와의 전쟁을 종료하고 미국이 목표로 했던 평화와 재건의 시기가 도래했다는 얘기다.
연설 말미에는 미국 국민을 직접 겨냥했다. 오바마는 "9ㆍ11테러로 폐허가 됐던 맨해튼 심장부에 새로운 탑들이 우뚝 솟았다"며 "이제 전쟁의 에너지를 재건과 치유에 쏟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오바마의 아프간 체류 일정은 6시간에 불과했지만 실보다 득이 많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는 최근 미군의 테러범 시신모욕 사진 유출, 민간인 총기 난사 사건 등 아프간의 반미여론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문서로 아프간의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카르자이 대통령의 감정을 확실히 누그러뜨렸다.
이보다 훨씬 큰 소득은 대선을 앞두고 '안보 대통령'의 입지를 굳힌 것이다. 미국 내 압도적인 전쟁반대 여론을 감안하면 오바마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철군 로드맵을 강행해야 한다. 때마침 빈 라덴 사살 1주년을 맞은 것은 그가 2014년 아프간 철군 방침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달 말 시카고에서 열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NATO군의 역할을 테러예방과 아프간군 훈련 등 비전투 분야로 옮기는 논의에 쐐기를 박겠다는 의도도 숨어 있다. 미 행정부 고위관리는 "NATO 회의 전 협약 체결을 원했던 대통령의 의지가 방문 시점을 사실상 결정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는 평화를 강조하기 위해 성조기와 군용 장비를 연설 배경으로 삼았다"며 "그는 선거의 해에 자신을 값비싼 전쟁을 끝낸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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