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원산지 증명이 중요하다는 거 잘 압니다. 매주 대책 회의도 하고 있구요. 그런데 마치 정부가 손 놓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면 난감할 따름입니다."
2일 오전 기획재정부 FTA 국내대책본부 관계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하소연으로 가득했다. 한미 FTA 발효 50일(3일)을 앞두고 '수출 중소기업들이 원산지 증명에 대한 준비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한국일보 보도와 관련해 그는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
물론 정부나 관련 기관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문제는 '번지 수가 틀렸다'는 것이다. 현장에선 정부의 탁상행정식 FTA 지원체계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대구의 섬유직물협동조합 관계자는 "원산지 증명을 돕겠다며 중소기업청, 지역 세관, 한국무역협회 지역 본부 모두 따로 연락을 해 왔다"며 "누가 더 잘하느냐를 따지는 것도 아니고 이걸 제각각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관세사 등 현장 상담 인원이 턱없이 모자라는데 여러 곳에 나눠져 있다 보니 그 내용이라는 게 결국 상품코드(HS코드)가 뭔지 정도를 묻는 기초 수준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관세청의 'FTA패스', 무역협회의 'FTA코리아' 등 중소기업에 보급하는 원산지 증명 관련 프로그램마저 제각각이다.
한미 FTA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정부는 그 동안 모든 행정력을 'FTA 성과홍보'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원산지증명 같은 실질적이면서도, 가장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선 제대도 준비하지 못했다.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 CEO는 "정부가 지금까지 FTA가 되면 큰 혜택을 볼 것이라고만 했지, 그 혜택을 보려면 원산지 증명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제대로 해준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FTA는 이미 시작됐는데 이제 와서 원산지 증명을 위해 전담 직원을 두고, 프로그램을 깔고, 정기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하니 답답할 뿐"이라고 밝혔다.
원산지증명은 이념의 문제도 아니고 친미ㆍ반미의 문제도 아니다. 그 자체가 현실이고, FTA나무의 열매를 따기 위한 사다리다. 중소기업들은 사다리도 없고 이용법도 모르는데, 정부는 열매를 따가라고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다.
박상준 산업부 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