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표절 문제가 청문회의 단골메뉴였는데 이제는 국회의원 후보자들에게 까지로 그 영역이 넓어졌다. 당연한 귀결이다.
논문이란 평생 한편을 쓰기가 힘든 분야도 있고, 1년에 수십편을 쓸 수 있는 분야도 있다. 한편의 논문에 저자가 1인인 경우도 있고, 10인 이상인 경우도 있다. 논문은 분야마다 질과 양은 물론 논문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나 그를 인정하는 관행도 다르다. 분야에 따라서는 논문을 습작처럼 냈다가 그것을 다시 수정・보완해 보다 나은 논문으로 재탄생시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논문이란 기본적으로 저자의 독창적 주장이어야 하는 것으로 기존 연구에서 한발 진전된 것이거나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논문을 완성시킨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학문적 바탕이 있어야 가능한 것으로 연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겨우 나오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해외유학을 가서 학교에 살다시피 하면서 연구에만 매달려도 박사학위를 따기가 쉽지만은 않다. 물론 대학의 수준에 따라, 학문분야에 따라 그 어려움이 더 크거나 작을 수는 있다. 하지만 박사과정 중에 연구에만 몰두해도 그 성과를 거두기가 어려운 것이다. 교수들도 연구현장에서 벗어나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면 논문다운 논문을 내지 못하게 되고, 논문 표절문제에도 휘말리게 된다. 하물며 연구를 전업이 아닌 부업처럼 하면서 좋은 논문을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즉 하루 종일 연구만 해도 시원찮은데, 다른 일을 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어 하는 연구에서 정상적인 학위논문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정상 박사학위가 필요하다 하여 갑자기 하지 않던 공부를 하게 되는 상황에서 어찌 논문다운 논문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연구가 주목적이 아닌 상황에서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거나 표절 없이 제대로 된 논문을 완성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개인차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분야의 전문가를 박사학위자로 하려는 관행도 부실 학위자를 양산하는 일이니,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예체능과 같은 실기로 평가받는 분야는 교수의 임용기준을 실기능력에서 찾으면 되는 것인데, 타 분야와 기준을 맞추려 하다 보니, 무리가 따르게 된다. 전공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평가하게 되면 교수들의 논문 문제는 더 심각해질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학위논문의 표절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은 결국 대학과 교수들의 욕심이 빚어낸 결과이다. 학생이 논문을 표절을 하던 짜깁기를 하던 교수들이 별로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학위논문으로서 통과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심사위원들이 부당하게 통과시킨 것이기 때문에, 관행이라 하지만 심사위원인 교수들의 책임이 크다 할 것이다.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많이 배웠다는, 전문가라는 증표로 작용하는 박사칭호가 개인의 능력을 포장하기 가장 좋은 것임을 파고들어 대학에서 부적절한 선택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교수나 연구자를 꿈꾸는 많은 자들이 외국유학을 선택한다. 해외 유명대학에서 공부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을 탄생시킨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한국도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을 만들어야 한다며 대학원을 육성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 경쟁력은 미미하다.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하지 않는 대학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리 없다. 질을 따질 상황이 아니다. 누구라도 받아 대학원을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런 대학원에서 논문표절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훌륭한 연구자를 배출하고 싶었겠지만, 결과는 초라하다. 이미 대학에 연구와 상관없는 특수대학원이 난립하여 대학원의 가치를 변질시키고 있다.
대학원을 정상적으로 운영하여 대학에서 학위장사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개인도 학위로 자신의 능력을 포장하려는 마음을 버려야한다.
국내 대학원에서 배출한 사람들이 세계적인 논문을 양산할 때 한국의 대학이 진정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니 대학원을 과감히 정리하여 대학원의 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모세종 인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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